지난해 말, 영국·헝가리 등 유럽을 순방하고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은 두툼한 외교 전리품을 풀어 놓았다. 김 대통령은 “밖에 나가 보니 우리의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세계적 수준”이라고 흐뭇해하며 영국 등과 맺은 하이테크 분야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세계 각국이 국경 없는 경제전쟁에 발벗고 나선 요즘, 한 나라의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ier)인 대통령의 외교적 지원은 자국 기업의 해외진출 확대와 국부 증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수출에 있어 국가 브랜드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 시점에서 얼굴마담격인 대통령의 외교지원은 기업에 천군만마와도 같은 것이다.
IT분야가 경제성장 엔진으로 부각되면서 각국의 수반들은 자국의 IT기업 지원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역 및 투자협상이 중요시되던 이전 외교와는 달리 IT·생명기술(BT) 등 소위 하이테크 분야가 더 강조되는 바야흐로 ‘하이테크 외교’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은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각국 수반들이 IT외교 활성화에 직접 나서거나 국가 CIO와 e엔보이 직을 신설하는 등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IT외교 기반 강화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갤럽과 CNN 등이 조사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인물로 선정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가장 대표적 사례다. 그는 지난해 초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세계 최강 IT주식회사’의 CEO답게 IT기업 총수들을 백악관에 가장 먼저 초청, IT기업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시는 이 자리에서 미국 IT기업의 해외진출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있으면 폐지하겠다고 공언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경영학석사(MBA) 출신인 그가 최근 중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베트남과 같은 국가에 대해 고성능 컴퓨터 수출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순전히 자국 IT기업의 수출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4월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의 총리에 부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역시 부시 미 대통령 못지않은 IT외교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일본발 세계경제 위기 시나리오가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이 때 그는 IT와 BT 등 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발판으로 일본경제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자국 IT기업의 수출 지원에 적극 나섰다.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유럽 등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NTT도코모를 비롯한 일본 IT기업들의 홍보에 열을 올리는데 그는 특히 최근 도코모가 유럽에 상륙한 것을 매우 흥미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단 미국과 일본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비롯해 프랑스·독일 등 유럽 강국의 수반들도 IT분야 외교에 누구보다도 열성적이다. 유럽은 특히 미국보다 3세대 이동통신과 양방향TV 산업이 앞서 있어 이들 분야 지원에 힘을 더 집중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난해 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오는 2008년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을 작심한 중국도 세금감면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다국적기업을 유치하는 등 오늘도 지구촌은 내로라하는 스타 정상들의 IT외교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