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듣는다>(10/끝)전길남 KAIST 교수

 82년 우리나라 인터넷의 효시인 ‘SDN’을 구축하고 90년에는 최초의 인터넷 전용망 ‘하나’를 개통시킨 인물.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수많은 닷컴 CEO들을 길러낸 인물. 전길남 KAIST 교수는 그래서 한국의 인터넷 대부로 통한다. 실제로 그는 짧은 인터뷰 시간중에도 인터넷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철학 그리고 카리스마 이미지가 듬뿍 풍겨나왔다. 이런 그가 요즘 외도 아닌 외도를 즐기고(?) 있다. 30년 가까이 연구에만 몰두해오던 그가 2년 전부터 제자 CEO들과 함께 네트워킹닷넷이라는 인큐베이팅 컨설팅업체를 설립하고 차세대 CEO 배출에 나선 것이다. 전 교수가 바라보는 인터넷에 대한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자.

 

 ■ 대담=서현진 인터넷부장

 ―요즘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바쁘게 보내신다던데 근황을 알고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주로 APAN(Asia-Pacific Advanced Network: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차세대 인터넷 구축을 위한 시험망)에 참여하면서 차세대 인터넷에 대해 연구를 합니다. 구체적으로 미국과 유럽 수준에서 차세대 인터넷 연구와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인터넷정부, 도메인네임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요. 올해는 특히 도메인 한글화에 집중하려 합니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은 제가 대표이사인 네트워킹닷넷에 출근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수들도 벤처기업을 운영해 볼 것을 권합니다.

 ―차세대 인터넷에 대해 관심들은 높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차세대 인터넷이란 무엇입니까.

 ▲현재나 미래에 인터넷에서 생기는 문제를 몇 년 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차세대 인터넷입니다. 간단한 예가 있죠. 우선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컴퓨터가 1억대라 한다면 앞으로 이것이 10억∼20억대로 늘어날 경우 이것을 어떻게 인터넷으로 연결해 사용할지에 대한 것이지요. 라우팅테이블(라우터나 기타 다른 인터네트워킹 장치에 저장돼 있는 데이터베이스)도 현재 6개월 이내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일 뿐 그 이상의 문제는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연구가 시급하지요. 브로드밴드(초고속망) 속도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브로드밴드의 속도는 현재 1∼100Mbps 수준인데 앞으로 기가(G) 단위로 넘어갈 것입니다. 이럴 경우 백본 기준에서 보면 테라(T) 수준에서 데이터를 처리해줘야 하는데 아직 기술력이 부족합니다. 이런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차세대 인터넷이죠.

 ―국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인터넷 선진국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실질적으로 선도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브로드밴드는 분명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가운데도 한국, 일본, 중국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과 달리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국의 브로드밴드 인터넷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더군요. 사실 앞서가는 것은 이용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이 대목에서 동석했던 제자 박현제 박사가 ‘외화내빈’이란 표현을 썼고 전 교수는 대체적으로 이 말에 동의했다). 일반적으로 연구용 브로드밴드의 속도는 100Mbps∼1Gbps입니다. 문제는 해외와 연동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45Mbps, 유럽과 2Mbps로 연결돼 있는 반면 미국과 유럽간에는 10Gbps입니다. 하지만 현재가 그렇다는 것이지 앞서 나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용자가 많다는 것은 기회입니다.

 ―일본과의 비교는 어떻습니까.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한데.

 ▲브로드밴드 보급률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월등하게’ 앞서 있습니다. 콘텐츠의 경우 일본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로 소니그룹과 닌텐도가 포진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콘텐츠, 게임, 애니메이션 분야부터 인터넷화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일본과 경쟁하기는 어렵고 경제 규모로 봐서도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적합한 모델은 이스라엘,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이미지, 보안관련 기술이 앞서 있습니다. 또 유럽의 후진국이던 아일랜드는 ‘e정부’ 구현을 중심으로 앞서 나가고 있으며 유럽에서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우선 아일랜드로 몰려갈 정도입니다. 네덜란드는 네트워킹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틈새시장만 잘 찾으면 우리나라도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이를 주도할 계층이 적다는 게 문제죠.

 ―그렇다면 IT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분야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의 1인당 GNP는 1만달러 수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1인당 GNP가 2만달러 수준인 홍콩, 싱가포르쯤은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인터넷이 핵심이 돼야 하고, 또 세계 최고라고 내세울 수 있는 기업이 나와야 합니다. 저마다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당장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기업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경쟁력이 낮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게임 분야가 있습니다. 게임은 세계 수준이며 아직 우리를 추월한 외국 기업은 없습니다. 게임 개발자의 능력도 연구소 수준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5년 정도는 적극 밀어줘야 합니다. 보안분야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보안은 언어와 관계없고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이라서 기대를 해볼 만합니다. 안철수연구소 등이 있지만 아직은 세계 수준과 거리가 있습니다. 좀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은 처음부터 미국에 의해 좌우돼왔고 그 영향력은 더 심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우려하는 세계적인 시각도 많습니다. 미국의 독점을 완화시키는 방안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 사람만큼 열심히 노력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그냥 이용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래서는 안됩니다. 한 분야만이라도 세계 수준으로 앞서가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의 독점도 막고 미국으로부터 대접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 등의 인터넷 수준은 미국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80년대부터 20여년간 미국 못지 않게 노력한 결과입니다. 이들은 EU에 맞서면서까지 막대한 투자를 해왔습니다. 빈약했던 우리의 지난 20년간을 돌이켜보세요.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인재교육의 근간인 학술망도 수준을 높여야겠죠. 아시아에서 학술망은 중국이 가장 앞서가고 그 다음이 일본입니다. 한국은 수준을 높일 수 있는데도 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죠. 빨리 투자해야 합니다.

 ―지난 1∼2년 사이 닷컴 벤처기업의 거품논란이 많았습니다. 기업을 직접 운영하는 CEO로서 어떤 입장입니까.

 ▲크게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주식값이 떨어지면서 거품이라는 평가가 공통적이고 IT분야가 과대평가됐다고 지적됐지만 거품이 빠지고 자리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죠. 벤처기업이 1만개가 있다면 이것 자체도 대단한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 망하겠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CEO가 1만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그룹화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가 나타날 것입니다. 벤처기업의 계속 늘어나야 됩니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겠죠.

 ―인터넷화에 따른 ‘정보격차’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정보격차는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빈부나 지역격차와 같은 국내 문제로 국한시킬 수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한글문화권 전체의 정보격차입니다. 재외교포들은 인터넷을 통해 한글이라는 민족문화권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보다 심각한 것은 북한과의 격차입니다. 이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한글문화권의 정보격차는 우리가 챙겨야 합니다.우리에게 큰 숙제입니다.

 ―인류사회발전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인터넷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전환하는 프로세스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신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대학에서 기술로 연구하던 차원이 아닌 사회간접자원의 하나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은 대부분은 아직 미국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우리나라에 맞는 것인지도 잘 모릅니다. 학생들은 하루종일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데 기성세대는 과연 다음 세대를 위해 적합한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연구와 대응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시대가 보편화될수록 사회과학자들의 몫도 커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사회과학자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미 미국·캐나다·영국·스칸디나비아 등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연구소가 많이 생겼습니다. 저도 사회학자인 아내(조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계속 논의하고 있습니다.

 <정리=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

 

 <약력>

 △1943년 일본 오사카생 △1965년 일본 오사카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교대학원 전산학 석사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교대학원 시스템공학 박사 △1968∼74년 미국 록웰 △1979∼82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1982∼99년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교수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전자전산학과 교수 △현재 네트워킹닷넷 대표이사 △저서:Pacific Computer Communications’85, North-Holland(1986), An Inheritance Mechanism for Object-Oriented LOTOS(1992), INET’95, Internet Society(1995)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