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뮤직리서치>봄여름가을겨울

 

 

 미국 음반시장에서는 ‘죽은’ 그룹 비틀스 히트곡 모음집 앨범이 판매 회오리를 일으키고 근래는 핑크 플로이드의 베스트 앨범이 순식간에 300만장이나 팔려나갔지만 우리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는 가수가 조금만 오래됐다 하면 적어도 음반 매장에서는 잊혀진다.

 지난해 김건모의 재기가 감동을 뿌렸지만 그를 ‘노장의 분발’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왠지 어색하다. 상당한 캐리어를 쌓긴 했어도 엄연히 그는 90년대 가수다.

 과연 우리 가요계에서 그 이전인 지난 80년대 활동 가수가 지금도 힘을 쓰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음악팬들은 386세대 가수가 시장의 일정 지분을 갖는 것이 ‘성인음악’ 그리고 ‘장르의 다양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현실은 틴에이저 지향의 ‘풍선껌 음악’이 주도하는 터라 그들이 버틸 자리는 극히 비좁다.

 모처럼 와신상담해 음반을 내도 10대 수요층이 이에 화답할 리 없다.

 86년에 데뷔한 관록의 그룹 ‘봄여름가을겨울’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근래 베스트앨범을 내긴 했지만 정규 앨범은 96년 이래 무려 6년이 지나도록 내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그들이 막 낸 신보 ‘Bravo, my life!’는 나지막한 소리의 ‘Long time no see’로 시작한다.

 먼저 오랫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변인 셈이다.

 한때 인기왕관을 쓰고 심지어 라디오프로를 진행하기도 했던 ‘사계(四季)의 두 남자’가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음악시장 환경이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취할 선택은 노장의 관조 그리고 내공의 힘이었을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늘 록 재즈 발라드가 혼재된 이른바 퓨전 록을 전파한 그룹으로 기억된다. 앨범에 진지한 연주곡이 많았던 것이 그 증거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녹음한 신보는 무엇보다 그간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다는 점이 돋보인다.

 록 성향의 지난 앨범보다 볼륨을 낮춰 한결 쉬워졌으며 그 덕분에 수록곡 ‘In the city’만 하더라도 과거의 어떤 곡보다 편안하고 안정된 연주를 선사한다. 관록의 결과물이다.

 난관을 견뎌낸 우리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도 그렇고, 선율도 귀에 잘 들어오는 타이틀곡 ‘Bravo, my life!’ 역시 그들의 연륜을 말해준다.

 스스로를 축하하는 여유와 거기에 묻어난 겸손함이 좋다.

 그들의 희망사항은 ‘부족하지만 팬의 곁에 자주 듣게 되는 음반으로 남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김종진의 보컬은 발음문제로 인해 어딘가 어눌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퍼뜨리는 창법을 구사해 그 약점을 개성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평소 “난 노래를 잘 못한다. 하지만 잘 하려고 노력한다”는 그의 고백은 솔직한 동시에 상쾌하게 들린다. 과거 이장희의 곡을 리메이크한 ‘한잔의 추억’에 그의 ‘연마된 개성’이 한껏 배어난다. 올 사계절은 무한대로 튀려는 ‘감각’보다는 차분한 ‘관록’을 보고 싶다. 그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