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과학관 리포트>(3)러시아편

 구소련 붕괴 후 연구개발에 소홀하던 러시아가 선진경제대국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다시 과학기술에 관심을 쏟고 있다. 국립모스크바대학.

 

 구소련 붕괴 후 1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 정부는 우수한 과학기술 능력과 우수 과학자를 보호·육성하는 것이 선진경제대국으로 탈바꿈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은 현재의 기관 운영비와 인건비 및 국가적으로 필수적인 일부 연구과제비용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민간부문의 과학기술 투자와 특히 해외로부터의 연구개발 투자, 상품개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0년 5월 출범한 푸틴 정부는 기존 과학기술부와 무역부·경제부의 일부 기능을 통합, 산업과학기술부로 확대·개편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초강국의 지위에서 전락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력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군사기술 경쟁력의 유지와 러시아 경제 재건의 견인차로서 과학기술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푸틴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국방기술의 민수화, 연구개발 투자 확대, 벤처기업 육성, 지재권보호 강화, 두뇌유출 차단과 과학자 처우개선 등으로 이들이 러시아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방향이 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거대 군사기술의 상업적 전용이 러시아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군수 산업담당 클레바노프 부총리가 산업과학기술부 장관을 겸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군사기술의 민수화를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기술과 두뇌의 무단 해외유출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며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태다. 이와 병행해 주요 국가 기밀기술에 접근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과학기술 스파이 행위에 대한 감시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산하 연구소들의 대외관계 통제를 위한 내부규정을 제정한 사실이라든가, 미국 또는 중국 등과 연계된 연구활동을 하던 러시아 과학자들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사건들이 일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 일각에서는 이런 통제 노력이 해외 과학기술 투자를 위축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감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자국 기술이 정당한 대가 없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외국과의 과학기술 협력 및 해외 연구개발 투자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등 법·제도적 장치를 재정비할 전망이다.

 또 러시아 정부는 과학기술자에 대한 처우개선 없이는 러시아 과학기술의 재건은 힘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소련 붕괴 후 정부 재정에 의존해온 러시아 과학기술계는 시대 변화에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집단이 됐다. 정부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월급을 받아야만 하던 연구원과 교수는 전직하거나 러시아를 떠나 지난 90년 194만명에 이르던 과학기술자가 99년에는 87만명으로 급감했다.

 또 러시아 정부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정부에 의해 승인된 ‘국가기술기반계획’도 그 일환이다. 이 계획의 목적은 국가기술기반의 확충으로 사회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국가 안전 확보에 기여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상품 개발, 군사기술과 산업기술의 접목,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발, 첨단기술의 산업응용을 위한 고급인력 양성 등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중점추진 분야는 신소재기술·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전자계산기술·전자통신기술·무선(고주파·마이크로파·음향)기술·광(광전자·레이저·적외선)기술·정보시스템기술·화학 및 촉매기술·생명공학기술·측정평가기술·환경기술·차세대연구예측 등 20개 분야다.

 러시아도 이제 국가 발전에 있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수립, 실행하며 외국과의 국제기술협력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미국·일본과는 또 다른 우수 원천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의 우수한 기술응용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 나라다. 때문에 서방 선진국의 첨단기술 보호주의의 압력과 개발도상국의 추격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한국에 러시아야말로 세계 일류 기술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기술협력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이은우 주러과학관 uwlee@koreaemb.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