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차 협상 이후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이 소강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국내외 언론과 증권 분석가들을 통한 장외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협상의 뇌관이라 할 부채탕감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방전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협상을 놓고 한국과 미국 언론, 증권가의 분석은 각각 자국내 시각에 근거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으며 이는 양측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한 ‘꼼수’가 아닌가 싶다”면서 “이같은 장외싸움은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를 시작으로 다우존스·월스트리트저널 등 언론과 일부 미국계 증권사들은 최근 잇따라 부채탕감 문제를 거론하며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은 38억달러(5조원)의 부채규모를 적시하면서 하이닉스 채권단의 반발로 협상이 난항을 겪는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하이닉스 D램 공장(FAB, 일관생산라인)에 대한 가치를 거론했던 이들이 갑자기 부채탕감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데 대해 하이닉스 경영진과 채권단은 의아해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들은 16일 언론을 통해 마이크론으로부터 부채탕감 제안을 받은 적도 없다고 부정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협상은 자산가치를 중심으로 매각가격을 정하는 작업에 집중돼 있다”면서 “부채탕감 문제는 이 가격이 결정된 이후에나 거론될 것인데 외신들이 왜 이를 거론하는지 배경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5조원 상당의 부채탕감 요구설에 대해 채권단은 당혹해하고 있다. 출자전환 이후 부채규모가 6조원인데 5조원이나 탕감해달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요구라는 것이 채권단의 시각이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채권단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 자국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렇지만 채권단 역시 이 대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채권단은 지난 협상과정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겨가며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는 둥, 며칠 안에 양해각서(MOU)를 교환할 수 있다는 둥, 아직 무르익지도 않은 협상내용을 마치 중계방송하듯 국내외 언론에 흘려왔다.
채권단이 마이크론과 다른 점이라면 상대방의 패를 읽기 위한 플레이가 아니라 자기 패를 보여주는 플레이였다는 점이다.
하이닉스 협상을 사실상 주도하는 채권단과 어떻게든 하이닉스를 헐값에 사들이려는 마이크론 사이에 낀 국내외 언론과 증권 분석가들이 춘향과 이도령 사이의 ‘방자’ 노릇만 하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