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모든 게 자업자득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요, 진리다. 길을 가는 사람이 앞을 봐야지 하늘만 쳐다보면 구덩이에 빠지기 십상이다. 요즘 벤처업계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예전과는 영 딴판이다. 온통 비리의 온상처럼 각종 게이트가 터져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정부는 벤처 비리에 대한 특감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려 비리는 척결한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벤처업계에 찬바람이 분다.
하지만 이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은 다름아닌 비리 벤처인이다. 이들이 벤처인의 본분을 망각한 채 투기·주가조작·로비 등 곁눈질에만 열중한 결과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자신이 최종 결정해 저지른 일인 까닭이다.
벤처인의 본분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첨단기술 개발과 기술 축적에 주력해 부를 창출하는 일이다. 비리 벤처인들은 이같은 본분보다는 벤처기업을 미끼로 한 밑천 잡겠다는 투기에 열중했다. 문어발 기업확장에다 차입을 통한 주식인수 등도 서슴지 않았다. 일부 벤처기업인은 코스닥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첨단분야에 대한 기술 개발에는 투자하지 않고 다른 업체를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정관언과도 유착했다.
흔히 벤처투자의 성공률은 전체의 5% 이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나머지 95% 이상은 실패한다는 뜻이다. 위험산업인 관계로 너도 나도 벤처산업에 뛰어들기 어렵다. 그래서 벤처인은 누구못지않은 투철한 사명감과 의지력, 도덕성 등이 필요하다. 사명감이나 의지력 없이는 미래가 불투명한 첨단기술 개발에 매달릴 수 없다.
이번 벤처 비리에서 나타나듯 부도덕한 벤처인과 눈길을 맞춘 각계 인사도 많다. 정관언론계 등이 다 연류돼 있으며 비리에 연류된 사람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벤처 비리에는 정부의 정책적 오류도 책임이 있다. 정부는 오는 2005년까지 4만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벤처기업이 망해야 4만개의 기업이 활착할 수 있는가. 의욕은 좋지만 탁상공론이다. 이러니 ‘외형위주’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틈새를 헤집고 ‘묻지마 투자’ ‘묻지마 벤처’ 등이 기승을 부렸다.
이제 지난 일을 거울삼아 벤처산업은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한탕주의가 판치는 투기판이 아닌 건전한 투자의 마당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 일에는 선량하고 성실한 벤처인이 앞장서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다. 각자가 곁눈질 대신 한길만 달리면 벤처산업은 우리 경제 회생의 총아로 각광받을 것이다.
정부도 앞으로 정책의 예방기능과 지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야 한다. 지금 벤처 비리 척결을 외치다가 다른 일이 터지면 흐지부지해서는 안된다. 정책이 지동지서(之東之西)하면 곤란하다. 무원칙과 변칙은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를 낳는다. 이것이 누적되면 정책에 대한 불신이 싹튼다. 망각은 필요악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번 벤처 비리에서 보듯, 본분을 망각한 대가는 고달프고 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