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2)중독증-마니아는 생산적, 중독자는 파괴적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권정혜 교수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꼭 전문가를 찾으세요.”

 지난 99년 설치된 고려대 인터넷 중독 상담센터장을 맡고 있는 권정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스스로 사이버 중독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나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전문가와 상의할 것”을 조언했다. 부모나 배우자와 같은 가족의 관심이 중요하며 절대로 가족이 해결하려 들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 예컨대 게임 중독증에 걸린 자녀에 대해 부모가 강압적인 태로를 보이면 가출과 탈선과 같은 2차적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중독자와 마니아의 차이가 있다면.

 ▲사이버중독자와 마니아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 마니아와 중독증을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양자의 일상 생활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니아의 인터넷 활동은 생산적이지만 중독자의 행위는 파괴적입니다. 결국 중독자의 일상생활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버중독증 상담을 하며 어려운 점은.

 ▲인터넷의 순기능이 많다보니 사이버 중독에 빠진 사람이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단계에 치료를 하면 벗어나기 쉬운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병리 현상이 비슷하지만 사이버 중독증 역시 중독 기간이 길수록 치료하기도 어렵고 피해도 더 커집니다.

 ―예방책이 있다면.

  ▲개인적인 자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터넷을 지나치게 탐닉한다 싶으면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중독증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적으로는 청소년들이 인터넷 이외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중독증에 관한 3가지 오류

 ◇중독증은 청소년 문제다=사이버 중독증을 청소년의 문제로 국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독증은 직장인에서부터 주부,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문제다. 최근 한국남성의전화가 99년 하반기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상담해온 외도 문제를 재분석한 결과, 인터넷 채팅으로 인한 외도가 반년사이 250배 늘었다. 주부의 채팅 중독증이 2차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을 처음으로 접하는 노년층 사이에서도 중독증의 폐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중독증은 청소년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점은 명확하다.

 ◇중독증은 쉽게 극복할 수 있다=중독증을 피하는 방법으로 사이버 세상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거나 단절하고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면 쉽게 고쳐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다른 중독증과 마찬가지로 이같은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한국정보문화센터 김정미 연구원은 “대부분의 상담자들이 ‘나는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이런 자만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물리적으로 따져보면 집안의 PC를 없애버린다 해도 주변에 PC방이 많고 특히 PC를 만지지 않고는 업무를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PC와의 단절을 통해 중독증을 없애겠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개인의 상당한 결심과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네티즌의 30% 이상이 중독증에 빠져 있다=최근 설문조사를 토대로 살펴보면 네티즌의 30% 이상이 중독증에 빠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오도되면 제대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또한 큰 오류라는 지적이다. 사이버중독정보센터 운영자인 김은성씨는 “기존에 나온 대부분의 연구 자료는 해외의 척도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라며 “다른 나라에 비해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 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2월 한 기관이 발표한 자료에서 외국 기준을 잣대로 측정할 경우 우리나라 사람의 60%가 중독증 증세를 보였지만 자체 개발한 한국형 프로그램에 따르면 절반 정도인 31.6% 정도만이 비슷한 증세를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국내 인터넷 환경과 사용자를 고려한 대응책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