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2)중독증-사이버 중독도 정신질환의 한 증상

 “처음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배우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채팅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차례 컴퓨터를 켭니다.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채팅 화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문득 아이들이 귀찮고 남편이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왜 이러지 하지만….”(여·30대)

 “통학과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밖에 나갈 때 이외에는 외출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온통 게임 생각뿐이고 애인과 친구들도 모두 떠났습니다. 가족과도 최근 연락이 끊긴 상태고 이제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남·20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사이버중독정보센터(http://www.cyadic.or.kr)를 통해 상담을 의뢰해온 중독증 환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사이버중독은 ‘정보이용자가 지나치게 컴퓨터에 접속하여 일상생활에 심각한 사회적, 정신적, 육체적 및 금전적 지장을 받고 있는 상태’로 정의된다. 도박이나 알코올·약물 증독 만큼이나 심각한 병리 현상이지만 극히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발견하기도 힘들고 체계적인 연구도 이뤄지지 않아 방치돼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인터넷과 컴퓨터를 비롯한 IT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통신기기와 각종 인프라의 발달로 인터넷뿐 아니라 케이블TV, 무선이동통신단말기(휴대폰) 등과 관련된 새로운 형태의 중독증이 알려지면서 건전한 IT문화를 좀먹는 독버섯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이버중독 현황=‘현관의 초인종을 누를 때는 항상 더블 클릭한다.’ ‘전자우편이 오지 않으면 우울해져 스스로 자신에게 전자우편을 보낸다.’ 사이버 중독이 얼마만큼 심각한 수준에 달했는지를 드러내주는 우스갯소리다.

 90년대초 PC통신에서 비롯된 중독증은 인터넷, 이동전화 등 새로운 IT 기술이 만들어낸 사이버 세상을 무대로 마수를 내밀고 있다. 게임중독·쇼핑중독·채팅중독·음란물중독·검색중독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휴대폰을 옆에 두고 있지 않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모바일 중독현상도 나타나는 등 새로 등장하는 IT기기 만큼 다양화되고 있다.

 중독의 유형이 다양해지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이버 중독이 IT 문화의 확산과 함께 다양한 계층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근 1∼2개월 사이에 발표된 각종 자료를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14일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선우씨가 발표한 석사논문 ‘인터넷 중독 실태와 영향 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10∼30대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3명 중 1명꼴로 인터넷 중독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5∼39세 사이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중독 실태를 조사한 결과 27.6%(154명)가 초기 인터넷 중독자였다. 특히 중증 중독자도 17명으로 3.1%를 차지해 전체 조사대상자의 30.7%가 인터넷에 중독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의 인터넷 중독 비율이 각각 29.4%와 22.8%로 나타났으며 10대는 절반에 가까운 46.8%(60명)를 차지해 10대의 중독증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포털 업체인 다모임이 지난 9일 10대 회원 11만39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이용도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2.5%가 방학기간 하루평균 3시간 이상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터넷을 사용하다 밤을 샌 적이 있다는 청소년도 50.7%나 돼 과반수의 청소년이 인터넷을 과도하게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앞서 지난 11월 한국정보문화센터와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가 네티즌 1만4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중독실태조사’에서도 1.6%가 심각한 인터넷 중독증세를 보였으며 61.7%가 크고 작은 증세를 토로하는 등 63.3%가 인터넷 중독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가 진단과 전문가 상담은 필수=사이버중독은 니코틴, 알코올 등 물질적 중독과 달리 행동 지향적 중독이란 점에서 조기 발견이 힘들 뿐 아니라 극히 사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증독증 환자가 스스로 환자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다. 다른 분야의 증독증에 비해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증독 여부 판단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중독증의 치료와 예방은 개인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사이버 중독증은 자기 행동을 통제하거나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때 나타나는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중독증”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평소에 잘 관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평소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교수는 “자신이 중독증일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야 하며 전문 사이트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사이버 중독과 관련한 전문 사이트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사이버중독 정보센터, 고려대학교 인터넷중독 온라인 상담센터, 청년의사인터넷중독센터, YMCA인터넷중독 및 약물예방 상담실이 있다.

 오프라인상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곳으로는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있다. 한국정보문화센터(http://www.icc.or.kr)는 오는 3월 인터넷 중독 상담사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6월 인터넷 중독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학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집체교육을 실시하고 상담해 주는 사업도 벌일 예정이다.

 ◇사이버 증독은 사회 문제=전문가들은 사이버 중독이 알코올·도박 중독과는 달리 일부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결국은 다양한 형태의 병리 현상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사이버 중독이 현실과 가상공간을 혼동해 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실제로 최근 한 학생이 인터넷 게임을 하기 위해 옆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그 집 주인을 흉기로 때렸던 사건이 일어났으며 게임과 현실을 혼동해 자신의 동생을 살해한 사건까지 발생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 게임과 인터넷, 사이버 주식 중독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이버 중독의 폐혜가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사이버 중독을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보기 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봐야하는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정보문화센터 전종수 정보생활진흥단장은 “사이버 중독은 우리 사회 전체가 인식의 전환과 함께 이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회 문제”라며 “정부 시민단체는 물론 게임업체를 포함한 기업들도 긴 안목을 갖고 적극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