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수업시간, 책상 아래 펼쳐두고 몰래 만화책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발각돼 벌을 썼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마치 만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책속 상황에 빠져 울고 웃고 멋진 장면의 만화그림을 몰래 찢어 간직하던 추억들이 최근에는 인터넷 만화의 보급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인터넷 만화보다 누군가 찢어간 만화책에서 정감을 느낀다는 만화마니아가 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화에서 얻는다는 ‘만화광’. LGCNS의 변광천 대리(32)와 인컴브로더의 서보상 과장(32)은 빛바랜 만화책을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만화책 다시보기와 수집하기가 취미인 두 사람은 만화얘기를 꺼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이 읽었던 최고의 만화 스토리를 앞다퉈 얘기하기 시작했다. LGCNS에서 전사적자원관리(ERP)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는 변 대리는 만화책 한장 한장을 넘기는 것도 아깝다고 표현했다.
“만화책을 읽을 때면 한장 한장에 그려진 인물들의 표정과 배경까지 꼼꼼히 빼놓지 않고 봅니다.”
무심코 넘기는 장면에 작가의 의도가 숨겨진 경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변 대리는 만화책 한권을 보는 데 1시간을 할애하는 정독 스타일. 1000여권의 만화책을 소장하고 있는 변 대리는 현재 컨설턴트 직업을 그만두게 되면 그동안 흥미롭게 봤던 만화를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하는 기획자를 꿈꾸고 있다.
“만화는 재미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풍부한 상상력이 녹아 있어 새로운 일을 계획할 때 도움이 됩니다.”
변 대리는 “대사가 하나도 없는 ‘곤’이라는 작품은 공룡과 동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 표정만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며 만화의 상상력이 끝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화 예찬론을 펼치는 변 대리는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만화책을 보다 선생님께 들켜서 벌을 썼는데 그당시 깁스를 하고 손을 들고 있었다며 옛 일을 회상했다.
인컴브로더 마케팅 매니저 서보상 과장도 3000권의 만화책을 보유하고 있는 만화광이다. 서 과장은 10살때 아버지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 갈 때도 900권의 만화책을 가져갔을 만큼 어린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갈 당시 15편까지 나왔던 ‘공포의 외인구단’을 4년 후에 돌아와 청계천을 뒤져 마지막 편까지 다 봤을 때 너무나 뿌듯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만화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현실세계와 달리 결말이 있어서 좋습니다.”
휴일이면 30권 이상의 만화를 읽는다는 서 과장은 변 대리와 달리 빠른 속도로 만화를 읽는 속독맨이다. 3000권의 만화책을 모으면서 어머니의 눈총도 많이 받았다는 서 과장은 허구의 만화를 읽으면서 창조적인 마케팅 아이디어를 생각한다고 한다.
만화광 2인이 좋아하는 작가는 우연하게도 똑같이 일본의 ‘아다치 미쓰루’다. 또 만화책을 빌려가고 가져오지 않는 친구들을 가장 경계한다고 한다. 만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장하고 싶어하는 두 사람은 만화책을 보물단지 다루듯 하면서 친한 친구가 부탁할 때만 책을 빌려준다고 전한다.
변 대리와 서 과장은 “만화는 그림과 스토리를 연계한 종합예술”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좌우가 뒤바뀌고 인쇄상태가 고르지 않은 낡은 만화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만화 속에 숨겨진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 낸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