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국내 e비즈니스의 최고의 화두는 전통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응해 변신하기 위한 노력, 즉 e트렌스포메이션(e전이)이었다. 전자·유통·철강·건설 등 굴뚝산업으로 분류된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정보기술(IT)을 이용해 e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했으며 이런 현상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해 신규 수익창출이 가능한 신사업 발굴’ 정도로 인식돼온 e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비용절감 및 판매증대, 나아가 가치사슬 전반을 재구축하는 기업활동으로 확대됐다. 올해는 이처럼 전통산업의 e트랜스포메이션으로 발전한 국내 e비즈니스 산업에 협업(collaboration)과 이를 바탕으로 한 c커머스가 본격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왜 협업인가=맥킨지 컨설팅사가 제공하는 경영혁신의 방법론(TOP)을 적용, 경영혁신을 추진한 모 기업은 1차 공급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즉 원자재 공급이 해당기업의 생산활동에 직결돼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관련된 중소기업의 내부 업무를 대기업이 나서 합리화해 줌으로써 그 활동을 통해 일정한 수익을 올리는 동시에 SK와 직접 맞부딪치는 업무절차를 표준화하거나 통일함으로써 간접적인 비용절감을 꾀한다는 전략이었다.
사실 기업들이 경영혁신을 위해 도입하는 각종 IT 툴이나 추진 범위가 기업 내부로 국한돼서는 그 실효성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 지 오래다. 기존 아날로그 질서에서도 기업들의 생산활동은 판매든 공급이든 일정한 가치사슬로 묶여 있어 절대 단일 기업으로 국한돼 있지 않다. e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과거에 공동 수·배송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거나 원자재를 공동구매하는 방식, 혹은 설계정보 공유 등 협업에 대한 고민은 중요한 문제로 처리돼왔다.
그러나 그 시절의 협업과 e비즈니스에서 부각되고 있는 협업은 무엇보다 일대일 기업간으로 국한돼 있지 않고, 모든 공급자들, 모든 고객사들 등 다대 다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런 점은 단순 거래 중심으로 등장한 e마켓이 통합물류 서비스나 설계 및 디자인 공유 등으로 그 서비스 범위가 확대 발전되고 있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경쟁사도 지식 공유 시대 = e비즈니스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은 협업으로 발전되면서 본격적인 C커머스 시대를 예고한다. e커머스의 다음 단계로 분류되고 있는 C커머스는 경영기획부터 자재공급·설계·물류·판매 등 기업활동 전반의 업무 흐름에 걸쳐 기업간 협업과 정보공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C커머스는 낮은 수준의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EC)가 최종 생산품의 판매나 원자재 구매를 인터넷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가 기초적인 기업의 생산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생산활동에 관한 협력이 보다 빨라지고,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기업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게 된다. 전문가들은 C커머스 활성화를 대비해 자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에 집중해 핵심역량을 확보하고, 타 분야는 과감하게 제휴,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사업을 수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브랜드로 승부하는 기업들, 마케팅 컴퍼니를 지향하는 기업들은 이미 C커머스 대열에 나선 기업들이다.
그러나 e비즈니스 시대의 협업은 그 결과가 산업 내 파급효과가 높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경쟁 마인드에 대한 변화 뿐 아니라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 즉 거래나 데이터의 표준화, 보안 등의 문제가 선행돼야 한다.
◆e-트랜스포메이션의 키워드는 ‘협업’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장균
최근 기업 경영에서 특히 전통업체의 e-트랜스포메이션 추진에 있어 타 업체와의 협업 기반 구축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경영 환경의 급변으로 과거와 같이 자사 혼자로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보다 생존 위협을 일찍 겪은 미국 기업들은 지난 90년대초부터 핵심적인 사업 운영 체제의 하나로 사업 파트너와의 협업 체제 구축을 꼽았다. 그 하나의 예가 협업을 통해 제2의 위기를 극복하였던 크라이슬러사이다. 이 회사는 신차의 컨셉 창출과 설계 단계에 부품업체들을 참여시키고, 부품업체와 공동으로 부품 가격을 정하고, 부품업체와 제조업체가 동일한 CAD 시스템을 사용하는 등 과거에 비협력적이고 폐쇄적인 관계를 상생 관계로 변화시켰다. 그 결과 이 회사는 개발 기간을 기존의 5년에서 약3년으로, 개발 비용을 업체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억 달러로 감축할 수 있었다.
디지털 경제가 진전될수록 더욱 더 협업 환경이 강조될 것이다. 시장 경쟁의 심화뿐만 아니라 제품의 고부가화를 위해 정보기술(IT)를 비롯한 금융기술(FT), 물류기술(LT), 컨텐츠 등을 제품과 융합해야 하는 관계로 자사만의 역량으로 사업 기회의 창출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전통기업의 e-트랜스포메이션 추진에 개별 분야에 높은 기술 수준을 보유한 벤처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 한 단면이다. 이렇게 되면 협력 유형도 지금까지 동일 업종내 수직적 구조였던 것이 이업종의 업체들도 참여한 수평적 구조로 변모할 것이다. 따라서 다수 업체들의 핵심 역량들을 다각적으로 연결한 밸류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의 기업처럼 행동하게 되는 가상 기업이 현실화되며, 이때에는 개별 업체간의 경쟁이 아니라 가상 기업간의 경쟁이 전개되는 상황도 예상된다.
기업의 협업 환경 구축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하지만 이의 실현에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오랜 기간동안 기업들은 협력업체를 포함한 다른 기업들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들이 부서이기주의로 인해 자사내 협업 환경을 구축하는 데 애를 먹는데, 하물며 서로 상이한 조직 문화와 이해를 갖고 있는 협업 참여 조직들 속에서는 상호간에 더욱 빈번한 충돌이 발생한다. 통합된 정보 기술 구조를 구축해야 하는 기술적 과제 이상으로 기존에 해왔던 협력업체 관리에 대한 자사 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공생할 수 있는 운영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협업 실무자들이 상호 신뢰 속에서 공통된 목표하에 자사의 이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고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협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뢰 형성을 위해 관련 조직의 실무자들이 모두 참가하는 공동 교육을 실시하고, 협업 수행 프로세스, 보상-위험의 공동 배분, 성과 측정 기법 등을 공식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관련 조직의 최고 경영자들은 상호 공통적인 이해 속에서 확고한 목표나 비전을 제시하고 정기적인 대화 창구를 만들어 협업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조정이나 전략 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협업 환경 구축이 생존의 필수 사항임을 깨닫고 첨단 정보 기술의 적용, 프로세스의 합리화보다 사람의 인식 변화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