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회로선폭 추이를 보면 60, 70년대에만 해도 수십 마이크론 정도였으나 80년대 수 마이크론으로 줄어든데 이어 갈수록 미세해져 지금은 0.3마이크론에서 0.15마이크론에 이를 정도로 초미세 상태입니다. 세계적인 반도체기업들이 회로선폭을 0.5 마이크론으로 제작하면서 반도체 성능이 한계에 부딪히게 됐고 이때부터 0.1마이크론, 즉 100나노미터의 나노기술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세계 공학의 중심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나노기술 선구자들은 정보기술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이 이제 한계에 도달, 나노기술만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MIT에서 만난 나노 과학자들은 고집스럽게 자연 현상을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나노 구조물을 제작하는 집념을 보였다.
MIT는 다양한 나노기술분야 중 특히 산업화 가능성이 크고 파장력이 큰 자기메모리(MRAM:magnetic random access memory)와 자기기록 기술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자기메모리 소자가 나노기술을 통해 상업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아이템으로 꼽힌다. MRAM은 기존의 반도체와 달리 신호의 증폭이 필요하지 않아 매우 빠른 메모리 소자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며 에러도 줄일 수 있다.
나노 크기의 전자가 가진 자기장을 제어하고 이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은 기존 반도체 기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저장 용량이 크다.
또 광 기록과 비교하면 정보 입출력 속도가 빨라 정보사회 고도화에 따른 대용량 정보 저장이 쉬운 게 특징이다.
자기메모리 소자는 이방성(anisotropic) 자기저항(AMR)과 거대자기저항(GMR) 및 턴넬링형자기저항(TMR) 현상을 이용해 제작됐다. 80년대 중반에 처음 제작된 AMR는 전류의 방향과 자화의 방향에 따라 저항이 변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AMR는 상온에서 최대 2%의 자기저항이 얻어지며 낮은 속도와 밀도로 인해 다른 메모리 소자에 비해 가격이 높다. 때문에 특수 응용 분야인 군사와 우주용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GMR와 TMR 현상을 이용한 거대자기저항메모리(GMRAM)과 턴넬링형자기저항메모리(TMRAM)은 출력이 AMR에 비해 매우 높아 이에 대한 연구가 MIT뿐만 아니라 각 산업체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GMR는 자성체와 금속, 자성체 다층박막 구조에서 88년 최초 발견됐으며 상온에서 10%의 자기저항비가 얻어진다.
TM램은 나노기술을 이용한 최대 유망기술로 부각되면서 세계적 연구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이는 자기저항비를 40% 이상 달성 가능한데다 높은 속도와 밀도뿐만 아니라 낮은 가격에 구현이 가능하다.
이처럼 자기메모리와 자기기록 기술의 상업화에 밑바탕이 되는 기술이 바로 수 나노의 전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시키거나 밀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MIT의 나노스트럭처연구실(NSL·NanoStructures Laboratory)과 프랜시스 비터 마그넷 연구실은 자기메모리와 자기기록장치 개발을 위한 기반 기술 개발과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는 MIT 나노기술 개발의 중심센터다.
NSL은 파장이 0.1∼10㎚인 X선을 이용해 수 나노미터를 식각하는 X선 식각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곳이다. X선 식각 기술은 매우 짧은 파장을 이용한 기술로 탑다운(Top-Down) 나노 공정 가운데 가장 세밀한 나노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NSL은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스페이스 나노테크놀로지 연구실(SNL)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나노구조물 공정 개발 △짧은 채널 반도체 기기와 나노마그네틱스 및 마이크로 포토닉스 개발 △X레이 세밀 식각 등을 연구한다.
프랜시스 비터 마그넷 연구실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MRAM과 자기기록의 핵심 현상을 실험을 통해 규명해 나노 연구계에 큰 획을 그은 곳이다.
이 연구실의 자가디시 무데라 박사는 지난 95년 상온에서 턴넬링에 의해 거대한 자기저항(MR)이 얻어지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고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했다.
무데라 박사의 연구성과는 이후 IBM과 모토로라·HP·삼성·하이닉스 등 산업체에 파급돼 M램 상업화를 앞당기고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무데라 박사는 나노 기술 연구에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프랜시스 비터 마그넷 연구실에는 전자의 스핀과 자기저항을 연구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제작된 4대의 연구장치와 거대 자기저항 발생장치가 갖춰져 있다.
무데라 박사는 “반도체 산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방법은 기계적인 방법론으로 반도체 회로선폭을 미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전기적 방법론으로 하나의 전자를 자유자재로 정렬하고 조절하는 나노기술”이라고 주장했다.
<보스턴=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