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벤처 생태계를 바꾸자>(4)벤처기업에 경영 노하우를

 최근 한 벤처기업 사장이 지난 2000년 1월부터 2001년 8월 사이에 J사 등에 네트워크 관련 제품을 공급한 것처럼 속여 108억원 가량의 가공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공금 7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벤처기업으로부터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아 부가가치세를 환급 또는 공제받은 정보통신업체 80여곳도 함께 적발됐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한 벤처기업 사장은 “가공 세금계산서는 벤처업계에서는 관례처럼 사용되고 있다”며 “털어서 먼지 안나는 벤처기업이 몇이나 되겠냐”며 억울해 했다.

 벤처 관련 비리들이 잇따라 지면을 장식하면서 벤처업계의 그릇된 경영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벤처기업이 불·탈법적인 기업 경영을 단순한 관행쯤으로 여기는 마인드부터 바로잡아야겠지만 그에 앞서 시스템적으로 벤처기업이 경영 노하우를 갖출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보기술(IT) 중심의 벤처산업이 자리잡은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털이나 컨설팅업체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나 컨설팅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경영진이다. 경영진의 사업 및 대인관계 스타일이 그 벤처기업의 사업 성공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벤처컨설팅업체인 DSI의 김민영 컨설턴트는 “A급 사업계획서에 B급 경영진보다는 B급 사업계획서에 A급 경영진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며 “학벌이나 대기업에서 근무한 이력보다 벤처 경영에 관한 경영진의 ‘입증된 경력’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영진의 짜임새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벤처기업들은 창업 초기에만 창업자나 엔지니어링팀이 사업을 이끌 뿐 이후에는 경력이 풍부한 CEO를 영입하고 영업·생산·재무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순차적으로 영입한다. 벤처가 기술에만 매달리다 보면 정작 시장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벤처기업의 창업자가 최고경영자(CEO)이면서 동시에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으로 벤처기업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국내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기형적 구도는 한국디지탈라인의 경우처럼 CEO 구속으로 쓰러지는 벤처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재무 분야에 있어서는 미국과 한국의 벤처가 더욱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들은 CFO가 재무담당보다는 코스닥등록 전문가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들이 벤처기업의 CFO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 벤처기업의 CFO로 있다가 증권사로 다시 복귀한 한 애널리스트는 “회사 측의 요구로 코스닥등록을 조건으로 계약직 CFO로 근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벤처의 CFO는 창업 초기 펀딩부터 IPO·증자 등 주식 관련 업무를 비롯해 회사의 재무 전반을 총괄하는 경영진이다. CFO는 CEO·마케팅임원 등과 함께 벤처기업의 3대 주요 경영진으로 꼽힌다.

 벤처전문가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벤처기업의 기술 중시 풍조가 경영을 소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코스닥등록 벤처기업 사장은 “회사 전체가 ‘엔지니어 출신만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자랑스러했다.

 하지만 기술과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던 벤처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장이 기술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경우는 기술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기술도 중요하지만 CEO가 시장을 바라보는 식견과 경영능력을 높이는 것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벤처기업간, 벤처기업과 대기업간 파트너십 형성을 통한 대내외 경쟁력 확보가 절실히 요구된다. 현재 벤처기업과 가장 밀접하다고 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에는 법·제도와 벤처캐피털의 실력 등을 감안할 때 벤처기업의 경영 능력 향상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기대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정 벤처의 체질을 강화하고 세계 무대로 넓혀나갈 수 있는 길인지 무릎을 맞대야 할 시점이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