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모든 정보통신정책은 정부의 사업자 허가에서 비롯된다.
80년대에는 독점 공기업인 한국통신을 직접 통제하는 통신정책을 펼쳤으나 경쟁체제가 도입된 90년대부터는 허가권을 바탕으로 서비스정책·산업정책이 제시됐다.
IMT2000 역시 마찬가지다. 2000년 7월 정보통신부는 ‘IMT2000허가선정 정책’을 통해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초고속정보인프라를 구축해 디지털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하고,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관련산업 연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IMT2000 허가를 규정했다.
세계 최초의 CDMA서비스를 통해 수출 100억달러의 국내 이동통신산업을 일으켰듯이 IMT2000을 통해 서비스·장비 등 국내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무선콘텐츠 등 관련 벤처산업의 육성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업자 선정방식과 관련해서는 “중소정보통신업체·콘텐츠업체의 사업참여기회 확대와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주주구성의 적정성을 평가한다”며 컨소시엄 구성을 유도했다. 당시 SK텔레콤 등은 컨소시엄이 아닌 기존 통신사업자의 단독참여를 주장했으나 정부는 특혜소지의 불식을 외치며 컨소시엄 선정을 강행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산업정책을 상징했던 표준문제를 놓고 정부와 사업자간 첨예한 대립이 불거졌으며 출연금은 경매제와 기존의 심사제를 혼합해 1조3000억원의 상한선을 책정했다.
거창한 정책목표와 함께 출발한 IMT2000 정책은 2000년말 유럽식인 비동기사업자로 KT아이컴과 SKIMT만 허가하고 동기식사업권을 선정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IMT2000 허가에 실패했던 안병엽 장관 후임으로 2001년 3월 입각한 양승택 장관은 취임일성으로 ‘기존 2G사업자에 대한 주파수 추가할당’이란 새로운 IMT2000 논리를 도입했다. 이후 IMT2000은 완전히 서비스정책을 위한 수단으로 범위가 줄어들었다.
주파수 추가할당이란 논리는 동기식사업자로 가장 유력했던 LG텔레콤을 끌어들이자는 고육책이었으며 이같은 IMT2000 개념정의를 발판으로 LG텔레콤은 출연금 인하와 IMT2000법인 설립 전 유상증자 형식의 2G-3G 조기합병이란 인센티브를 받아냈다.
이에 비동기사업자들도 2G-3G 조기합병을 던졌고 정부는 “IMT2000이 기존 사업자에 준 추가 주파수”라는 변화된 논리를 제시하며 전향적 검토를 시사했다.
‘주파수 양수·양도 2년간 금지’라는 조항도 무시했고 IMT2000사업계획서의 이행여부를 감독해야 하는 임무도 사실상 접어뒀다.
정통부의 2G-3G 조기합병에 대한 전향적 검토발언의 문제는 이제까지 제시했던 정통부의 정책논리를 완전히 뒤엎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장비산업과 콘텐츠산업 발전은 뒤로 하고 대주주의 경영 및 투자효율화만 담보된 정책이다. 이미 배가 부른 통신사업자를 위한 허가였는지, 차세대 이동통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허가였는지 이제 와선 구분이 안된다. 특혜시비를 우려해 컨소시엄 방식으로 허가했는데 결과는 더 많은 특혜를 부여한 게 됐다.
만약 컨소시엄 선정을 하지 않았으면 KT와 SK텔레콤은 일시출연금으로 6500억원을 납부해야 하고 15년간 금융비용과 함께 나머지 6500억원을 자신의 돈으로 납부해야만 한다. 투자자금 마련은 별도다.
그러나 컨소시엄 선정원칙으로 KT(지분율 50% 기준)는 허가법인인 KT아이컴(자본금 5000억원)을 통해 IMT2000주파수를 차지했다.
이에 2G-3G 조기합병이 이뤄지면 KT는 이동통신사업의 생명줄인 IMT2000 주파수를 얻는 것 외에도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게 된다. 일시출연금 6500억원은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돈으로 납입했고 KT 자신의 출연금은 고스란히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자회사의 계좌에 저축하게 됐으며 자신이 납부한 자본금 외에도 투자자들이 납부한 2500억원까지 챙기게 된다.
합병비용을 배제한 상식적 계산이지만 2G-3G 조기합병이 이뤄진다면 꿩먹고 알먹는, 손도 안대고 코푸는 방정식이다.
영국의 BT가 IMT2000 경매대금으로 8조원(40억3000만파운드)을 지불해야 했던 상황과는 비교가 안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정부는 현재 IMT2000 출연금을 바탕으로 생색내기 정책에 바쁘다.
사실상 벤처나 국민주주들이 납부한 1조3000억원(동기식 2200억원 제외)의 IMT2000 출연금을 바탕으로 IT·BT·CT·NT·ET·ST 등 국책연구과제만 수행하겠다고 하고 있다. IMT2000의 당초 정책은 팽개쳐둔 채 말이다. 서비스정책만 하고 싶고 산업정책이 부담이 된다면 정통부는 이제라도 스스로의 위상을 심각히 고민하고 부처간 업무조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