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양수리. 거듭되는 밤샘 편집 작업으로 스태프들은 모두 초죽음이 돼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줄은 조금만 건드려도 쨍 소리를 내며 끊어질 것만 같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담당 PD가 오후 내내 휴대폰을 들고 좌불안석, 안절부절 못하며 여자친구와 싸우는 것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필자는 담당 PD에게 잠깐 서울에 다녀오라고 했는데, PD는 그만 편집실 열쇠를 가지고 가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우리는 처음엔 속으로 ‘잘됐다’며 식당 마당에 있던 평상에 큰 대자로 누워 모처럼 한가하게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잠깐 다녀오겠다던 PD는 12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연락도 두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가함은 초조함으로 바뀌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식당으로 차가 들어올 때마다 고개를 빼고 “왔나?”며 확인하고 있었다.
‘부아앙∼∼’ 격한 엔진소리를 내며 담당 PD가 돌아온 시간은 새벽 2시. 그는 애타게 기다린 우리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자리에 여자친구까지 앉혀놓고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우리들도 그 모습을 보니 차마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일과 사랑’ 그 사이에서 방황하던 총각 PD에게 그날은 아마도 잊지못할 멋진 추억의 하루가 됐으리라.
일명 ‘PD 실종사건’으로 잠시 휴식을 취했던 우리들은 막바지 편집작업에 몰두하다 그야말로 간 떨어지는 아찔한 사고를 당하고 만다. 편집기사가 80분 분량의 데이터 중 반 정도를 날려버린 것이다.
원인을 찾는 일은 두 번째고 우린 편집 완성된 카피본을 틀어놓고 밤 새워 똑같은 플레임 수로 작업을 해야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인데다 일이 커질 것을 염려한 우리들은 이 일을 비밀로 했고 지금까지 그 비밀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젠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
그렇게 편집작업을 마치고 옵티컬을 넣기 위해 작가와 PD 둘이서 1차 더빙을 했다. 담당 PD는 연기과 출신이라 곧잘 해냈지만, 노래방 말고는 마이크를 잡아 본 적이 없던 작가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래도 한시간 반 만에 80분 분량의 더빙을 마쳤으니. 서툴지만 그만하면 첫 입맞춤은 성공적이었다.
주인공인 강두타만 빼고 모든 성우의 더빙을 마친 우리는 마지막으로 두타의 목소리를 연기할 김정현씨를 녹음실로 불렀는데 녹음실로 들어선 그는 작가를 보자 박장대소하는 것이었다. 미리 들어보라고 전달한 테이프가 성우들이 녹음한 것이 아니라 PD와 작가가 녹음한 1차 더빙 테이프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상도 출신의 작가 말투를 흉내내며 얼마나 놀려 댔는지 모른다.
그래도 작가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대장니임∼ 마, 최선을 다해 주이소!”
런딤 극장판 첫 시사회가 있던 날, 우리는 소년소녀 가장들과 장애아들을 초대했다.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 중간에 포기했더라면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떨리지만, 일반 관객을 모아놓고 하는 시사회는 그야말로 감회가 달랐다.
런딤은 속된 말로 대박이 터지지도 않았고, TV 시청률도 저조했다. 하지만, 난 런딤에 애정이 많다. 극장판은 물론이고, 모체가 됐던 TV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물론, 머리로는 문제가 많다는 걸 알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어휴, 내 새끼’하듯이, 난 그렇게 애정을 거둘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일에 대한 공과가 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한 사람과 웃음과 눈물이 남는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스태프 모두의 땀이 아니었다면 런딤 극장판은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난 그들에게 한없이 고맙고 그들 모두를 안아주고 싶다. 그럼, 난 누가 안아주냐고? 런딤을 본 관객들의 웃음과 박수가 나에겐 세상 무엇보다 값진 포옹이다.
<디지털드림스튜디오 한옥례 감독 cartoony@dds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