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군, 또는 영리단체건 비영리단체건 큰 조직에는 확실한 것과 안전한 것,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이 어김없이 존재한다. 따라서 기업가가 되는 것은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들을 끊임없이 바꿔 나가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추진력·열정·사명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 기업가는 ‘하면 된다’는 분위기를 창조해야 한다.”
지난 96년 컴퓨터업계 공룡인 IBM을 3년만에 흑자로 끌어올린 루 거스너 회장은 이미 아멕스카드 회장 시절에 한 강연을 통해 우리 벤처에 필요충분한 조언을 한 듯 보인다.
벤처태생이라고 해야 4년여에 불과한 우리 벤처업계에는 새로운 도전정신 대신에 안전한 것과 돈 되는 것에 더 골몰하는 풍조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1년반 동안 거품이 사라지면서 어려움을 겪어온 벤처기업들이 바싹 몸을 움츠린 결과다.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꿈을 쌓아올린 성공벤처인보다는 과장되고 부풀려지기만 한 ‘무늬만 벤처’라는 괴물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000년 2월 29일 이민화 회장의 벤처협회장 이임사는 마치 오늘날 벤처생태계의 위기를 예고라도 한 듯하다.
“지금 한달이 얼마나 아까운데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반(反)벤처정서가 벤처성장의 발목을 잡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반벤처정서는 ‘모든 벤처인’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넣게 되고, 이것이 국민정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중략), 저희들은 단순히 이를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최근 검찰 조사결과처럼 정관계·금융계·언론계 로비 등을 통해 행해졌던 투명하지 못한 분식회계, 실적 부풀리기, 조작 등의 행태는 ‘문제벤처기업’의 공통점이다. 게다가 한국의 벤처 가운데 상당수가 ‘온실벤처’라는 말을 들어도 부정하기 힘들 정도로 정책적 특혜속에 안주했다는 점도 상당부분 사실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가 5% 이상인 기업을 벤처로 규정하는 조항 때문에 ‘매출 1억원, 연구비 500만원인 기업을 벤처로 규정’해 특혜를 받고 있다”는 한 벤처인의 지적에서도 벤처정책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적 혜택속에서 아직도 건재(?)한 Q사를 보자.
이 회사는 2년전 통신장비를 개발해 대기업에 납품키로 했지만 성능을 인증받지 못해 실패했다. 대기업 엔지니어를 연구소장으로 초빙해 앉혔지만 그는 특별한 성과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할 매출이 발생하지 못해 심각한 자본잠식에 빠져들고 있지만, 그래도 이 회사는 여전히 벤처기업이라는 미명 아래 계속 활동중이다.
물론 ‘모험기업’이란 의미로 시작한 ‘벤처’가 온실속의 화초처럼 된 배경을 단지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의 잘못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벤처기업 육성의 초창기부터 압축성장을 통해 벤처생태계를 조성해낸 데는 든든한 벤처지원정책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벤처기업의 5대 성공요인 가운데 첫번째가 ‘기업가정신’으로 꼽힌다. 이들이 말하는 기업가정신은 ‘프런티어정신’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자조정신’ ‘해보자(Just do it!)는 정신’ 등이다. 한마디로 미국 벤처의 성공열쇠는 벤처기업인의 ‘올바른 기업가정신’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말해준다.
결국 벤처정책의 성패는 벤처사업가의 올바른 기업가정신이 정책과의 상호 조율과 융화를 통해 어떻게 결실을 맺느냐 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