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도 이번 협상의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1만4000여명의 하이닉스 임직원이다. 어렵사리 일궈온 직장이라 애정도 각별하지만 하이닉스의 운명에 따라 자신들의 진로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반 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낸 이들에게 이번 협상은 새로운 탈출구다. 더욱 안정적인 기업에 넘어가 생업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협상 과정에서 임직원의 고용유지 문제는 뒷전에 밀려난 듯한 인상이다. 고용유지 문제는 경영권을 가질 마이크론의 고유권한이라는 시각 때문에 협상 대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불안한 것은 매각대상이 아닌 비메모리반도체 임직원 역시 마찬가지다. 뚜렷한 비전도 없이 내몰릴 상황이어서 홀로서기가 힘들다. 비메모리부문의 상당수 연구개발자들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하이닉스를 떠난 것은 이들의 고조된 위기의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각 과정에서 직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주인이 바뀌면 많은 수가 퇴직하기도 한다. 매각된 회사나 매각후 남은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인 만큼 인력이탈 대응책을 세워야 합니다.”
고용불안은 생산직에서 높다. 이들은 국내외 언론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구조조정과 일부 라인 폐쇄설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현재로선 노조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론은 반도체업체 가운데 인력을 ‘쥐어짜는 회사’로 정평이 나있다. 주말엔 비정규직 인력을 투입해 인건비도 아끼는 회사다.
이러한 회사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 사전에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하이닉스는 인력을 방만하게 운영한다는 비판도 받아온 터다.
이 회사 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고용유지는 회사가 매각협상 이전부터 약속했던 부문이다. 진행중인 협상을 지켜보겠지만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산업계 관계자들은 인수가 이뤄지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나 이로 인한 임직원과 지역경제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토로라의 파주공장을 인수한 ASE코리아도 고용안정이 유지되지 않고선 자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직원 전원승계는 물론 기존 복지조건의 유지 요구를 수용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매각되는 회사 직원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고용안정이다. 고용을 보장하지 않으면 남아 있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며 이렇다면 인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에선 고용유지에 대한 논의가 도외시되고 있다. 협상을 지휘하는 채권단은 당장 채권회수에 골몰하고 있으며 마이크론은 생산설비만 원하고 있다.
자칫하면 양측이 노조문제로 홍역을 치를 수 있다. 노조문제로 협상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 대우자동차 매각협상 과정에서 발생한 노조의 반발이 아직도 생생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하이닉스가 매각대금을 후하게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용만은 그대로 유지돼야 국내 반도체 인력양성에서 제구실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핵심인력인 연구개발자들이 떠나지 않도록 마이크론이 한국을 연구개발 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그래야만 국내 산업 인프라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또 매각과정에서 이탈하는 고급인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연구개발자들이 설계벤처회사나 장비회사를 창업해 국내 산업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방안들이다. 유휴인력을 산업저변을 넓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협상주체는 물론 정부도 고용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기는커녕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해 하이닉스 임직원들의 불안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