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주식시장의 최대 관심종목은 이동통신이었고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0년 4월 BT가 영국내의 IMT2000사업을 확보하기 위해 8조원을 경매대금으로 쏟아부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동전화 외에 영상전화와 2Mbps의 데이터 전송속도를 제공한다는 IMT2000은 단연 화제의 초점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정통부는 2000년 7월 정책방향을 확정하고 곧바로 심사기준을 발표했다. 확정된 심사기준은 정통부가 IMT2000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으며 신청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암시한다.
정부는 심사기준에 ‘주식소유의 분산정도’ 항목을 삽입, 컨소시엄 구성을 하지 않으면 탈락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국민주 모집을 권고했다.
‘대주주·주요주주의 자금조달계획 적정성’ ‘장비제조업체 등과의 협력계획’ ‘투자계획의 효율성’도 제시했고 나아가 정보통신산업 발전 및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 배점을 높게 해 IMT2000사업권을 신청하고자 했던 KT 등 대주주들을 압박해갔다.
이같은 심사기준에 긴장한 KT·SK텔레콤·LG전자 등 사업권 신청자들은 통신장비업체는 물론이고 정보통신 중소기업이나 콘텐츠업체들을 현재의 컨소시엄 구성주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읍소전략을 마다하지 않았다.
KT·SK텔레콤·LG전자 등은 2002년 상반기에는 무선인터넷이 주축이 되는 IMT2000서비스를 개시, 이동전화로 월드컵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사업설계도를 한결같이 제시했으며 구성주주들과 꿈의 이동통신을 함께 하겠다고 설득했다.
KT·SK텔레콤·LG전자의 편가르기에 부담을 느낀 통신장비업체들은 참여를 포기했고 IT벤처들은 어려운 사정속에서도 미래형 통신에 대한 희망을 갖고 통신사업자와 재벌의 오랜만의 환대에 기꺼이 응했다. 이들은 투자와 함께 IMT2000 관련기술개발에 매진했다.
특히 KT는 국민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초기 구성지분의 5%를 국민주로 할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KT와 SK텔레콤 등 IMT2000 대주주들은 사업권을 받은 즉시 처음의 약속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KT와 SK텔레콤은 사업권 취득 이후의 계획을 내놓기는커녕 IMT2000이 당장 실현되기는 힘든 서비스라는 엉뚱한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IMT2000에 본격적인 투자를 집행하기 전 2G와 합병해야 IMT2000 투자자도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적반하장의 주장도 제시됐다. 이는 IMT2000 구성주주들을 마치 돈놀이하기 위해 투자한 집단들로 폄하하는 것에 다를 바 아니다.
물론 IMT2000서비스를 사업계획서에 따라 효율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신청법인의 주장도 나왔으나 대주주들의 주장에 묻혔다.
SK텔레콤이 대주주로 있는 SKIMT가 정통부에 보고한 올해 투자계획은 시늉내기에 그치는 불과 495억원이다. KT아이컴은 올해말 비동기식 상용서비스 제공을 위해 7390억원을 투자한다고 정통부에 보고했으나 대주주인 KT의 2G·3G 조기 합병방침에 따라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도 못하고 있다. 조기합병이 이뤄진다면 7390억원의 투자계획은 없었던 일이 될 것이 확실하다. LG텔레콤은 투자자금을 받자마자 연기방침을 시사하고 있다.
KT나 SKT가 조기합병, 투자연기를 추진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일리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이해할 수도 있다. 투자 및 경영의 효율성이 최우선하기 때문이다.
IMT2000법인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현재 자신들의 수익원인 2G사업의 파이가 위협받을 수 있게 된다. 더욱이 2G망에 깐 2.5G 네트워크는 ‘본전’도 찾지 못하게 된다. 만약 2G와 3G가 직접 부딪친다면 중복투자이자 과열경쟁이다.
3G를 바라보는 대주주들의 입장이 이해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주주들의 이같은 시각은 산업적 관점이나 투자자는 차치하고 이용자들에 대한 배신행위일 수도 있다. 모바일 초고속인터넷이라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갈망했던 이용자를 무시하는 처사에 다름아니다.
이용자에 대한 고품질의 서비스 제공을 리스크가 있다며 기피하고 전화 중심의 질낮은 서비스만 강요한다면 이는 배임행위이자 자신들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자해행동인 것이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