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는 제조 및 생산의 EMS 물결을 한국실정에 맞게 수용해 유망 비즈니스로 활성화할 방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한국도 첨단제조업쪽에서 경쟁력과 고용창출을 유지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생산만 전담하는 전문업체의 출현이 필수적이지만, 국내 EMS산업 활성화를 막는 장애물이 많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물건을 직접 만들지 않는 제조업’ 시대에 대한 이해도가 절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전세계에 거미줄같은 생산망을 갖춘 거대 EMS기업들이 한국에는 현지공장을 확보한 사례가 단 한건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한국경제가 생산기술이나 가격경쟁력을 떠나 EMS란 제조모델이 성장하기에 매우 척박한 토양이란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의 물건만 주문받는 제조업을 한다고 얘기하면 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아요. ‘생산’이 부가가치가 낮고 천한 일이라는 고정관념때문에 EMS란 업종으로 은행대출은 꿈도 못꾸는 형편입니다.”
한 중소 EMS업체 사장은 한국이 국제적인 EMS 물결에 동참하려면 생산을 천시하는 사회적 풍토부터 개선하고, 특히 EMS로 업종전환을 희망하는 중소제조업체에 정부차원의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대기업의 제조부문 중국진출이 가속화하고 국내 중소제조업체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여러 제조업체를 통합시켜 규모를 갖춘 EMS기업으로 거듭나게 만들자는 ‘EMS구조조정론’은 산업계에서도 점차 공감대를 넓혀가는 추세다.
그러나 국내 EMS산업의 활성화는 정부·대기업의 협조가 없이 중소기업의 노력만으로 대응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EMS산업 육성이 시급한 과제임을 인정하지만, 전통적으로 제조를 핵심역량으로 간주해온 국내 대기업들이 빠른 시일내 제조분야를 떼어내는 EMS모델 도입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KAIST의 한순흥 교수는 일본 소니가 제조부문을 분사시킨 것처럼 국내 대기업도 수직통합형 생산모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한국적인 EMS모델을 구축하는 데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이미 중국 제조업계도 활발한 해외투자유치로 설계에서 금형, PCB공정과 조립까지 단지안에서 한번에 해결하는 거대 생산전문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요. 우리도 제조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면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아직 실효성이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EMS모델이 국내 제조업계의 덩치를 키우고 경쟁력을 살리는 데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이상, 한국적인 EMS모델을 구축하려는 산업계의 모든 시도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아야 할 당위성을 지닌다.
국내 제조업이 뼈를 깎는 체질개선없이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할 경우, 중국이란 경제블랙홀에 완전히 빨려드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변화를 주저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