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 상호간은 물론 세상 만물과 정보의 교류를 위한 통신행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신행위는 태초는 물론 정보와 통신이 사회의 축이 되고있는 현대까지 매체와 기술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지속적으로 수행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수행되게 될 것이다.
또한, 원시시대 사람들의 통신행위가 현 시점에서 볼 때 매체라고 말할 수 없고, 기술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라도 인간의 생존을 위한 조건으로 본다면 지금의 고도화된 정보통신 매체와 기술이 갖는 비중과 같다.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든 인간의 존재수단이었고,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도구였으며, 인류의 진화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인간들은 좀더 편리하고 저장이 용이한 정보처리와, 그 정보의 교류를 위한 통신매체의 개발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인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정보통신 매체와 기술은 발전하고 정교화 되었다. 이를 통해 다시 인간은 진화할 수 있었으며, 그 진화를 통해 또다른 정보통신 매체와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정보통신 매체와 기술은 당시 사회의 산물이기도 했지만, 그 시대를 진보시키고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시대가 정보통신을 발전시키고, 정보통신은 다시 그 시대를 진화시켜온 것이다. 이러한 정보통신의 특성은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구체적이며, 강력하게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번 호부터 정보통신 매체와 기술의 발달과 인간사회의 진화에 대해 살펴본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정보통신 매체와 기술을 활용했고, 그것이 인간의 진화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알아본다. 정보통신과 인간의 구체적인 융합을 살펴보는 것이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 내용은 1988년 KT의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작성된 경희대 진용옥 교수(현 경희대 정보통신대학원장)의 ‘정보통신 매체기술의 변천’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지금으로부터 100만년 내지 25만년 이전의 인간들이 어떠한 형태로 통신을 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정보의 전달을 위한 도구도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생활도구인 막대기나 돌, 골각기 등의 매체를 사용하여 동물적인 방식으로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과 정보를 교류했을 것이다.
최근 네안데르탈 구인(舊人)과 크로마뇽 신인(新人)의 뼈를 비교 연구한 결과 목의 구조에 관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발견되었다. 네안데르탈 구인의 목의 구조를 분석한 결과 그들의 발성기구는 발달이 덜되어 있었기 때문에 언어구사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서 크로마뇽 신인의 목 구조는 현대인과 같아서 사람다운 음성발성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인류는 약 4만년 전에 이르러서야 겨우 동물과 다른 언어 발생의 기본이 될 발성장치를 목에 지니게 된 것이다.
이렇듯 원시인들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다른 사람 또는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통신수단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몸짓이나 울음 등을 만들어내고 목의 구조까지도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언어라는 통신매체의 활용은 인류문화 발달에 있어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공통된 언어를 통해 인간들은 구성원들간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그 나름대로의 통제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씨족 집단의 형성과 유지를 가능하게 했고, 사냥 기술의 전수와 도구제작 방법을 서로 가르쳐 주고 전달하여 인간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비록 저장성이 없을 지라도 구성원들간 공통된 언어는 인간을 도구사용의 동물로 발전시켜 주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인간의 도구 사용은 사회를 급격하게 진화시켰고, 정보의 전달을 위한 통신수단도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화되었다. 기호와 문자, 봉화 등을 이용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전기적 신호를 이용하게 되면서 인간의 통제범위가 확대되고 이를 통해 전 세계적인 변혁을 이룩하게 되었다. 특히, 정보통신 매체와 기술이 오늘날에 와서 특별히 그 의미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그 중요성이 다른 가치재(예를 들면 에너지나 자원)보다 우월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보와 통신이라는 용어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정보의 본질은 흐름이다. 정보는 에너지와 물질과 같이 자원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 흐름 또한 에너지나 자원의 흐름과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다.
정보의 흐름에서 볼 때 가장 원초적 단계는 자연 발생적이거나 단순히 존재하는 현상자체로, 이 단계에서 수집하거나 획득하는 노력을 거치면 비로소 자료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자료를 분석하고 활용하기 쉽도록 가공함으로써 보다 유익한 내용으로 변화되는데,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보는 이 단계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이때 인간이 개입하지 않을 경우 정보는 존재하는 현상으로 그칠 뿐 실제적 가치에 이르지는 못한다. 때문에 정리된 자료상태를 좁은 의미에서 정보라 한다면 넓은 의미로 볼 때는 원초적 대상이나 자료단계에 있는 것까지 포함한다.
정리된 정보는 저장해 두거나 전송하여 이용자에게 공급될 수 있다. 물론 같은 정보라 해도 저장되는 형태나 표현방식이 달라져서 언어, 문자 그림과 같은 형태로 바뀌기도 한다. 이 과정을 변환과정이라고 하는데, 정보 또한 에너지나 물질과 유사하게 여러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발생-획득-처리-변환-저장-전송-교환-이용의 8단계가 그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의 흐름과 달리 한번 이용된 정보라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장소에서 또다시 이용될 수가 있기 때문에 정보는 순환성(가역성)이 성립된다.
이러한 정보의 의미를 보다 폭넓게 그리고 넓은 영역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통신의 작용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통신은 ‘정보와 인간의 이음새 관계’로서 정보흐름의 전체단계를 지칭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보면 ‘정보의 전달 기능’으로 축소된다. 따라서 정보의 흐름단계로 파악할 때는 전송과 교환으로 국한된다. 오늘날 정보와 통신의 개념을 분리하는 경우에는 획득, 저장, 처리, 변환을 정보영역이라 하고 전송, 교환, 이용단계를 통신이라 지칭한다.
통신은 정보와 달리 내용상의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면이 강하다. 내용보다는 장소상의 변화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정보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또한 정보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보다 자료와 기계와의 관계가 더 중시된 반면, 통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보다 중시된다. 결국 정보와 통신 그리고 인간의 3자 관계에서 볼 때 인간이 주체이며 객체가 정보라면 그 수단이나 이음새는 통신이 된다.
정보와 통신은 그 한계가 모호하여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더구나 기술진보에 따라 인터넷과 같이 동일선상에서 다자간 정보의 이동과 교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정보와 통신의 개념이 융합되어 사전적 용어정리의 구분은 더욱 모호해졌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문명체계가 출현하였다고 규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다가오는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통신 매체가 인류를 한단계 더 진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