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인간을 만나다.’
인간이 주먹보다 단단한 돌멩이를 집어들었을 때부터 시작된 인연이었다. 도구의 인간, 이른바 호모파베르와 도구(기계)는 함께 진화하며 여러 개의 접점에서 교차해 왔다. 그릇은 손바닥을, 송곳은 손가락을 흉내낸 모방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망원경·현미경 같은 눈의 연장(延長), 자동차나 비행기와 같은 다리의 연장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철학자 슈미트는 이들 공존의 역사를 도구의 시기, 기계의 시기, 자동기계의 시기로 나눴다. 도구의 시기에서 인간의 몸을 보완하는 첫 걸음을 디뎠다면 기계의 시기에는 유기에너지 대신 증기 등의 무기에너지를 섭취하는 장족의 발전을 보였다. 자동기계의 시기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피드백(feed back). 기계는 통제를 통한 항상성의 유지라는 비술(秘術)을 익히면서 생리학적 개념을 얻어낼 수 있었다. 통제를 뜻하는 사이버네틱스 기술체계를 익힌 기계는 비로소 사이보그(cybernetic+organism:통제하는 유기체)의 칭호를 하사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인간과 기계의 잡종’을 탄생시키면서 그들의 만남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만난 게 아니라 오히려 합쳐진 것이었다. 만남은 서로 독립된 타자간에 이루어지는 것. 아직 기계는 인간의 타자로서 온전히 서지 못했다. 타자로서 완벽히 서기 위해 기계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바로 기억과 구별, 그리고 소통의 메커니즘. 이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기관은 ‘구별’의 함의를 갖는 눈이다.
생체인식 기술 구성도는 구별의 메커니즘과 닮았다. 친구 철수를 길에서 알아보고 인사하는가 하면 목소리만 듣고도 애인을 맞추는 인간의 행동은 생체정보를 저장한 후 센서를 통해 감지, 저장 데이터와 맞춰본 후 인식해내는 얼굴인식·음성인식의 메커니즘과 다를 바 없다. 눈을 가리고 손의 감촉만으로 남편을 찾아내는 ‘가족오락관’식 게임은 장문인식·지문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실제로 생체인식 업체들은 로봇 개발자와 함께 사람을 기억하고 구별하는 로봇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주인의 명령만 듣는 로봇의 전제조건은 주인을 알아보는 로봇이 아닌가. “당신 앞에 온전히 서기위해 수십만년을 기다려왔어요.” 로봇의 모습을 한 기계가 앞에 설 채비를 하고 있다면 성급한 상상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미국의 몇몇 도시 곳곳에는 감시카메라의 모습을 한 기계들이 숨어 미리 곰씹어 기억해둔 수배자들을 ‘알아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고, 경찰청의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도 누군가를 ‘찾아내려’ 진땀을 빼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두운 곳에서지만 조심스레 인간을 구분하고 알아보기 시작하는 기계의 눈을 뜨게 해 인간과 해후시키고 싶은 조바심은 비단 기자만의 것은 아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