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3)에티켓

 1884년 전신을 발명한 모스는 “신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큰가”라는 문장을 처음으로 전송했다. 1876년 전화를 발명한 벨은 수화기를 들고 “왓슨군, 용무가 있으니 이리로 와 주겠나”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다.

 전기·전자적 특성을 통신에 이용한 이같은 위대한 발명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터넷 게시판, e메일, 문자메시지, 채팅 등으로 다양화됐다. 그릇에 해당하는 미디어의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오히려 천박해졌다.

 너무 빨리 달려온 것일까. 익명성과 비대면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2002년 1월 사이버 세상에는 예의가 실종됐다. 더욱이 에티켓의 실종은 사이버 폭력, 음란물의 유통, 인격 침해 등 신체적·심리적 피해를 주면서 이미 간과할 수 없는 사회악이 됐다.

 ◇예의가 실종된 사이버 공간=네띠앙의 네티켓 추진팀 정지은씨는 게시판 지킴이다. 네티앙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골라 경고를 하거나 임의로 삭제하는 일이 주업무다. 정씨는 이번주 들어 5일동안 게시판에 올라온 36개의 글 중에서 25개를 삭제했다. 정씨가 삭제한 글들은 ‘여자가 남자 위에서 무슨 짓을…’과 같은 음란한 내용부터 ‘도전하십시오. 부자가 되는 글입니다’ 등 광고글, ‘개○○들 또 광고하고 ○○이냐’와 같은 욕설이 담긴 내용들이다.

 정씨는 “네티켓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전파됐지만 아직까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상당수에 음란·욕설·폭력 등이 담겨있으며 일방적으로 보내는 광고성 내용”이라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가 부족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꼬집었다.

 정씨가 근무하는 네띠앙은 지난 2000년 3월부터 네티켓 운동을 의욕적으로 펼쳐왔다. 정씨는 특히 “최근들어 무차별적인 광고가 게시판이나 메일로 전파돼 이에 대한 네티즌의 항의와 신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음란물과 광고물을 무차별 살포하는 스팸 메일은 하루에만 수천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길을 가는 아무에게나 음란물을 눈앞에 들이밀고 구입을 종용하는 ‘삐끼’들이 사이버 세상에서는 오히려 당당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스팸메일이 전체 메일 발송의 60%를 차지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사용자수가 늘어나면서 모바일 메일 분야에서도 에티켓 실종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음란·폭력 문자 및 영상의 전송은 총 7895건이며 특히 욕설을 비롯한 언어 폭력은 264건이나 됐다. 이밖에도 유언비어와 명예훼손·사생활 침해가 각각 28건, 18건이었고 불건전 대화도 3154건에 이르렀다. 정보기술(IT)의 발전에 따라 통신 수단도 발달하고 있지만 에티켓의 실종만큼은 제자리거나 더욱 악화되고 있는 추세다.

 ◇익명성과 비대면성이 가장 큰 원인=전문가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에티켓이 자리잡지 못하는 이유를 익명성과 비대면성 때문으로 플이한다. 서로 얼굴을 대하지 않고 의사를 소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내 주장을 펼 수 있는 매체의 속성 때문에 현실 세상에서 억눌렸던 어두운 욕망과 본성이 여과 없이 분출될 수 있다는 것.

 사회학자들은 사이버상의 에티켓 실종은 이른바 문화지체, 윤리지체, 인터넷 아노미 현상과 같은 사회 병리 현상으로까지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장(36)은 “메일, 채팅, 쪽지, 게시판 등을 통한 언어 폭력이나 에티켓 실종은 사이버 세상이라는 새로운 생활 방식에 걸맞은 문화와 윤리의 부재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또 어 소장은 “일부 단체들이 만든 윤리 가이드 라인이 외국의 것을 번역하는 데 그쳐 한국적인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물의가 따르며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층이 이해하고 수긍할만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이버 세상에 맞는 새로운 네티켓의 정립이 미흡했음을 지적했다.

 어린이들이 에티켓이 실종된 공간에 노출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교육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했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남일초등학교에서 네티켓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윤명숙 교사(35)는 “어린이들의 경우 게임이나 채팅에 노출되면서 욕설이나 비어, 무분별한 통신언어 사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등 피해가 더 크다”며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전문적으로 지도를 할 시간과 자료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교육을 통한 네티켓 만들기에 나서야=정보통신윤리위원회 이은경(37) 교육팀장은 “욕설이나 비방, 심지어 인신공격, 명예훼손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이버 공간에서 내용 삭제나 피해자의 신고에 따른 규제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며 “전 사회적인 캠페인과 함께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을 통해 네티켓을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어기준 소장도 “현실 세상에서 이뤄지는 예절 교육처럼 네티켓 교육이 가정과 학교에서 이뤄져 습관화가 돼야 한다”며 “간단하고 쉽게 구성된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부모를 먼저 교육시키고 전문 교사를 양성하는 일도 시급하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30여명의 교사가 모여 미디어 교육을 하고 있는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깨미동)의 옥성인 대표(33)는 “CA 시간을 통해 인터넷 등 미디어 관련 교육을 실시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며 “초등학생들처럼 어릴수록 교육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조기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일 초등학교 윤명숙 교사는 “학급 홈페이지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에티켓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아이들끼리 e메일을 서로 돌려보도록 하고 스스로 네티켓 광고도 만들게 했더니 어느 시점에서 스스로 바뀌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 학교의 성공 사례는 홈페이지(http://namil.netschool.ez.ro)에 올라온 글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