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37년 휴렛과 패커드가 만든 HP에서 시작된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60년이 넘는다. 지역경제력만으로도 세계 12위권을 웃도는 세계경제의 심장으로 떠올랐다. 스탠퍼드대, 클라이너퍼킨스·소시니 등 세계적인 벤처캐피털, 로펌, 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팔로알토는 실리콘밸리 벤처생태계의 축을 이룬다.
10년도 안되는 짧은 역사에 현재 최대의 혼돈과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벤처산업계는 실리콘밸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스탠퍼드대 교환교수인 서울대 차상균 교수는 IT에 대한 낙관적 사고를 강조한다. “장기간 조성된 우수한 벤처생태계, 그리고 연중 고른 좋은 날씨가 IT산업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만들면서 사람들을 실리콘밸리에 붙들어 둔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새너제이공항에서 만난 인터넷비즈니스를 한다는 한 교포기업가는 ‘실리콘밸리의 침체로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반갑습니다. 거품이 걷히면 실력있는 기업들의 성공확률이 높아질 테니까요”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가능성은 대략 3∼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노키아캐피털의 한인 심사역은 “초기 투자유치 이후 성장을 유지해 성공할 확률은 1000개 업체 가운데 3개사, 즉 0.3%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경영능력이 없는 창업주라면 투자자에 의해 거침없이 쫓겨난다는 것.
서니베일 소재 벤처인 콰르테트사의 부사장인 프레드릭 오씨는 “자본이 몇차례에 걸쳐 유입되면서 경영자의 주식도 자연히 줄어듭니다. 경영을 못하면 투자자들이 CEO를 바꿔버리죠”란 말로 고효율을 요구하는 캐피털리스트들과 벤처기업간에 이뤄지는 자연스런 도태시스템을 설명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또한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이다. 통계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선 창업후 1년내 20% 정도가 문을 닫고, 또 1년이 지나면 남은 기업의 50%가 보따리를 싼다. 이러한 도태시스템속에서 오늘도 실리콘밸리에선 창업이 이뤄진다. 이러한 도전정신은 실리콘밸리의 또다른 매력이자 아무도 벤처의 꿈을 접을 수 없게 하는 활력소다.
실리콘밸리의 주도권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스탠퍼드 출신의 백인벤처기업가들에게 있다. 빌 게이츠, 앤디 글로브도 꼼짝 못하는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존 도어는 자신의 회사 펀드에 번호를 매기고 친한 인맥에게만 투자를 권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실리콘밸리의 외국계 후발주자들에게는 더욱더 인맥 형성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지난해부터 실리콘밸리의 한인기업가들도 KIN(Korean IT Network)이란 모임을 조직, 한국인의 휴먼네트워크 구성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TIE(The Indus Entrepreneurs), SIPA(Silicon valley Indian Professional Association) 등의 단체를 구성, 무시할 수 없는 결속력과 영향력을 보인 인도인의 모습에서 글로벌화를 위한 시급한 과제를 읽을 수 있다. 현지의 한인기업가들은 “인도인의 클럽에서 초청하면 래리 엘리슨이나 앤디 글로브도 기꺼이 참석한다”고 이들의 영향력을 설명한다.
이처럼 실리콘밸리는 벤처기업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과 그곳에서 사업하는 이들의 열정,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성공에 대한 낙관과 창의력 및 우수인력의 젖줄인 대학이 포진하면서 여전히 세계 IT산업의 심장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벤처의 발상지인 실리콘밸리는 최근 좌절과 자괴감속의 우리 벤처인들에게 열정과 도전정신이라는 커다란 지표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