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davinci@ncsoft.co.kr
사이버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기술발달에 의해 가상현실의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면서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자아를 인식하는 데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빚어지는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가상현실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성격, 모습 등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복합정체성(Multiple Personality) 형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런 복합적이고 분열적인 정체성은 사회혼란과 개인의 정신적 건강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실감각의 퇴화에 따른 이상행동, 익명성을 배경으로 한 무분별한 욕망의 표출이나 폭력성, 다중 인격에 따른 대인관계, 가족관계 파괴, 고독감과 각종 사이버 중독증 등은 사회병리현상이 될 수도 있다고 일부 사회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반대의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우선 그 하나가 ‘유연한 자아’라는 개념이다.
한 사회심리학자가 주장한 이 유연한 자아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복합정체성을 ‘다양한 자아에 접근할 수 있는 유동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가상현실이 제공하는 여러 개의 정체성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역할과 성격을 유연하게 바꾸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상현실로 인해 정체성이 혼돈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다가올 사회에는 여러 개의 자아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복합 정체성의 문제는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에도 때와 장소에 맞는 역할을 하듯이 유연적으로 상황에 맞는 정체성을 선택하여 그에 맞게 행동하는 하나의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아직까지도 ‘중심찾기’에 익숙해져 있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낯선 개념일 수 있지만 변화의 흐름을 견지한 하나의 미래예측임에는 틀림없다.
또 하나 사이버 공간의 자아 갖기에 대한 예찬을 하자면 사이버 공간의 평등함을 빼놓을 수 없다.
리니지와 같은 게임만 보더라도 그 게임 속의 세상은 현실보다 더 정직하고 공평한 세상일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은 상태로 태어나 똑같은 위치에서 인생을 시작하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 발전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 게임 속의 자아는 채팅을 통해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제도를 만들어나가며 목표 성취를 위해 협력해야 함을 배워나간다.
이러한 게임 속 자아의 행동양식은 현실의 자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가상세계의 장점을 현실세계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자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볼 때는 지났다고 본다.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확산에 노력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