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수율을 향상하라.’
다국적 반도체업계에 조직개편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극심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투자시점을 재조정하고 수율향상을 통한 원가혁신에 나선 데 이어 조직을 개편해 효용성을 높이기로 한 것.
기존의 품목별 사업부 구분을 없애고 직무별 사업부 체계를 도입해 중복된 업무는 과감히 통합, 조직을 슬림화했다. 또 같은 업무를 하는 임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전세계 지사들을 업무별로 수직계열화하기도 한다. 몇몇 선진업체에서는 아예 직급을 없애고 호칭도 파괴, 맡은 역할 중심의 새로운 조직체계 및 호칭을 갖췄다.
인텔코리아 한상철 커뮤니케이션세일즈(CSO) 본부장은 몇달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명함에 무선통신컴퓨팅그룹(WCCG) 상무라고 적혀 있었다. 직무는 스트롱암·스트라타 플래시메모리 등 무선통신분야 반도체를 담당하고 직급은 상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본부장뿐만 아니라 100여명 인텔코리아 직원 누구의 명함을 봐도 상무·이사·부장·차장과 같은 기존 한국식 직급은 쓰여있지 않다. 대신 본부장·부서장(또는 팀장)·책임 등 낯선 명칭들이 채워져 있다.
“조직을 직급 중심의 수직적 체계가 아니라 업무 중심의 수평적 체계로 바꾸기 위해 새로운 조직체계와 명칭을 도입했다”는 오미례 인텔코리아 마케팅본부 PR 부서장은 “일부 임원들은 아래 팀원들에게 아예 호칭도 미국식으로 이름(퍼스트 네임)만 부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겠지만 직급에 상관없이 개인이 능력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인텔측의 기대다.
루슨트에서 분사한 아기어시스템스코리아는 지난해 말 전체 조직을 인프라인스트럭처시스템그룹과 클라이언트시스템그룹으로 나눴다. 기존 광부품·네트워크·DSP·모뎀 등 품목별로 나뉘어 있던 조직을 통신시스템과 개인고객 등 성격별로 크게 구분했다.
“기존에는 한 고객사라도 품목별로 여러 영업사원이 주문을 받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었다”는 박수달 지사장은 “통합된 조직체계는 고객에게 신제품 개발에 대한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총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코리아는 요즘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직할부서체계를 도입하는 중이다. 기존에는 한국지사를 자체적인 조직체계로 운영했지만 앞으로는 직무를 중심으로 본사와 유사한 조직체계를 갖춰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제 초기단계이고 최종적으로 세팅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는 이영수 지사장은 “기존 조직체계와 새로운 조직체계가 자연스럽게 융합되면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종신고용에서 비롯된 종적인 질서를 강조하기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업무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조직체계로 바꾸는 추세”라면서 “이같은 움직임은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