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ASP라는 말을 써서도 안된다. ASP의 본래 사업모델은 대부분 변형된 지 오래다. 지금으로선 ASP는 그룹웨어 등 협업형 솔루션분야에만 적합한 모델일 뿐 나머진 IT아웃소싱의 부류다.” 한때 ERP ASP 선발업체였던 브릿지솔루션그룹(BSG·대표 설준희)는 이제 더 이상 ‘ASP’ 전문기업을 고집하지 않는다. 말대로 그냥 IT아웃소싱 업체다. ERP 등 기업형 솔루션시장에서 ASP가 외면당한 것은 엄연한 시장현실을 반영한 결과이고, 원래 ASP업체들이 가졌던 사업모델의 정체성을 근본부터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소기업 시장이 아니다=기업형 솔루션업체들은 최근까지 한결같이 중소기업 시장에 몰려들었다. 종업원수 300인 미만에 매출 100억∼500억원에 이르는 영세 사업장이 1차 타깃이었다. 문제는 주 공략대상이었던 이들 중소기업이 투자는 비교적 많이 들어가는 데 비해 소득은 보잘 것 없다는 점. 외산 ERP의 경우 초기 컨설팅에서 개발·구축, 전산센터 운영·관리, 전담요원 배치 등에 따른 제반 비용을 제하고 수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최소 60∼70명의 인가사용자에 3년간 총 계약금액 10억원 수준은 돼야 한다는 게 요즘 들어 각인되는 적정수준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요 ASP업체들의 대다수 고객사는 인가사용자수 10여명 안팎에 기껏해야 수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BSG의 기산텔레콤, 넥서브의 오리엔트가 계약금 7억∼8억원 수준에 실속있는 고객사였다. 넥서브 오병기 사장은 “중소기업 시장에서 수지타산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오히려 비용만 쏟아붓는 고객대상”이라고 고백했다.
◇예상을 빗나간 1대N=기업형 솔루션시장에서 당초 기대와 달리 ASP업계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사업모델의 착오다. 원래 ASP의 속성을 단순히 표현하면 ‘표준화된 패키지를 다수의 고객사에게 그대로 뿌려주는 것’. 하지만 ERP ASP 시장에서 컨설팅·구축·운영관리에 대한 고객사들의 과다한 커스터마이징 요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이는 패키지 구축과 운영대행 못지 않은 비용부담을 초래했다. 한마디로 1대N이 아닌 1대1의 서비스로 판명된 셈이다. 계약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고객사가 돈이 되지 않는 이유다. BSG 남영삼 이사는 “엄밀히 따지면 현재 기업형 ASP의 경우 원래 사업모델과 거리가 먼 일종의 시스템 아웃소싱 형태”라고 말했다. 넥서브를 비롯, 주요 ASP 전문업체들이 본래 수익기반인 월정 운영 수수료보다는 대부분 컨설팅·구축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협업형 솔루션=가온아이·피코소프트·더존디지털웨어 등 협업형 솔루션의 ASP사업자들은 사업모델의 문제보다는 시장상황의 미숙함에서 어려움을 겪는 측면이 크다. 현재 통신사업자와 통합 패키지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협업형 솔루션 ASP는 가격구조가 워낙 박한 상황에서 아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만한 사용자층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룹웨어나 세무·회계 프로그램의 경우 사용기업당 적게는 1만원에서 5만원대의 가격을 매길 수 있지만 ASP업체들이 챙길 수 있는 수입은 수천원에 불과하고, 등록만 해놓고 실제 이용하지 않은 기업도 많다. 데이콤 관계자는 “협업형 ASP는 중소기업 정보화의 저변이 보다 확대돼야 안정될 수 있는 사업”이라며 “하지만 수만·수십만개 기업을 유치하더라도 큰 돈을 벌기는 힘든 사업모델”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민식 연구원은 “해외와 비교할 때 기업고객의 과다한 커스터마이징 요구나 중소기업 중심의 수요처 발굴은 전반적으로 국내 IT시장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진단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