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임오년 새해를 맞아 정부와 문화산업계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른바 21세기 문화강국의 실현을 위해서다. 정부와 업계는 올해 우리의 문화산업이 비상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고도성장을 통해 양적으로 팽창해온 문화산업이 질적성장으로 바뀌어야 할 시기다. 시장고도화도 이젠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더불어 게임·영상 등 일부 콘텐츠를 위주로 발전해온 산업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발전시켜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할 과제도 있고 집중 육성해야 할 분야도 있다.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문화산업계가 올해 꼭 해결해야 할 10대 과제를 선정, 해결방안 등을 집중 점검해 본다.
지난해 한국은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체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100% 늘어난 25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일부 선발 업체들의 경우 해외 서비스에서도 성공을 거두어 한국산 온라인 게임이 ‘국내용’이라는 오명을 씻고 ‘글로벌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예컨대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는 지난해 대만에서 ‘리니지’ 서비스를 통해 10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소프넷(대표 민홍기) 역시 ‘드래곤라자’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만에서 매달 2억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또 액토즈소프트(대표 이종현)는 중국에서 ‘미르의 전설2’를 상용화해 동시접속자 10만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엔씨소프트를 비롯한 몇몇 업체들이 온라인 게임의 해외 서비스를 통해 로열티 수입까지 올릴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산 온라인 게임의 해외 진출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게임 업체의 전체 매출 2500억원 가운데 해외에서 벌어 들인 금액이 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온라인 게임 종주국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게임만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상품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 진출 초기의 시행 착오를 답습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반도체에 버금가는 수출 효자 품목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미 1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며 한국 업체들이 선발주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과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문제다.
◇진정한 해외 진출 원년=국내 온라인 게임업체들의 올해 화두는 수출이다. 사실 지난해부터 해외 진출의 물꼬는 열렸지만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라는 것이다.
특히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을 감안하면 관련 업체들이 지난해보다 훨씬 공세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최고 500억원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린다는 목표다. 지난해 가장 두각을 나타낸 대만에서 전년 대비 50% 이상 늘어난 매출을 달성하고 일본·중국·미국·홍콩 등지에서 많게는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둘 계획이다.
제이씨엔터테인먼트·이소프넷 등 지난해 대만·중국 시장에 진출했던 업체들은 남미와 동남아로 시장을 확대해 해외 매출을 국내 매출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올해에는 일본·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들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어 앞으로 2∼3년이 지나면 한국에 버금가는 황금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역시 엄청난 인구로 인해 머지 않아 인터넷 이용자가 우리나라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생 업체들의 해외 진출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웹젠(대표 이수영)·나코인터랙티브(대표 홍문철)·그라비티(대표 김학규) 등 한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생 업체들은 이미 수출에 나서 가시적인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밖에도 올 상반기 처음으로 온라인 게임 시장에 진출하는 업체들의 상당수는 국내 서비스와 해외 서비스를 병행하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어 온라인 게임 수출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이같은 입체적인 ‘글로벌 비즈니스’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다면 올해 국내 업체들은 해외에서 500억원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열린 시장과 그 적들=해외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달리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수많은 업체들이 시행착오를 겪었듯이 막연한 환상만 갖고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가 막대한 초기 투자비만 날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제이씨엔터테인먼트와 액토즈소프트는 지난해 대만 파트너 업체의 부도로 인해 게임 서비스를 중단함으로써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이들 회사는 우여곡절 끝에 최근 다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국내 업계 최초로 대만 시장에 진출한 위즈게이트는 최근 채산성이 맞지 않아 현지 게임사업을 철수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들 업체의 실패 사례를 꼬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해외 서비스의 경우 현지 사정에 밝은 파트너를 얼마나 잘 선정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것. 실제 대만 시장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경우 대만 감마니아가 현지 서비스를 대행하지 않았다면 이같은 성공은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무조건 빨리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는 조급증 역시 경계 대상이다. 해킹이 일반화된 대만이나 중국 시장의 경우 충분한 사전 조치 없이 서비스를 강행할 경우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본·남미·동남아 등 새롭게 부상하는 시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지 상황에 맞는 만반의 대비 없이 섣불리 진출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내 업체간의 제살깎기 경쟁도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지나친 경쟁으로 현지 서비스 업체로부터 받는 로열티를 서로 낮추는가 하면 덤핑 수출까지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업체간 정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해외 시장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자율적인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물론 한국게임산업개발원 등 정부차원의 대책도 시급한 실정이다.
이밖에 차별화된 게임 개발, 현지 마케팅 기법 개발 등 해외 진출에 대한 치밀한 연구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제이씨엔터테인먼트 김양신 사장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만큼 이젠 해외 진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환율, 하드웨어 비용, 현지 서비스료, 현지 인건비 등 국가마다 다른 변수를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이에 맞는 마케팅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