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출혈경쟁 하지 맙시다.”
지난해 저가입찰에 따른 출혈경쟁으로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된 SI업체들이 서로에게 자제를 부탁하며 늘상 하던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짐도 잠시 뿐,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저가입찰 경쟁에 돌입하곤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온라인 연합복권’ 사업 입찰에서는 참가 업체간 과당경쟁을 막고 시스템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입찰가격 하한선 제도’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국민은행이 산정한 온라인 복권시스템 구축 비용은 향후 7년간 총 복권 판매액(5조4000억원)의 11.5%인 6000억원 정도. 이를 근거로 국민은행은 사업제안서(RFP)에 ‘시스템구축 예상 비용의 80% 미만으로 프로젝트 비용을 제안하는 업체는 평가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실제 평가 과정에서도 기술평가를 통과한 상위 3개 업체만을 대상으로 가격평가를 실시해 기술력이 없는 업체가 낮은 가격을 무기로 최종 사업자에 선정되는 악순환을 원천 방지했다.
국민은행 복권사업팀의 엄주필 차장은 “이번 사업은 향후 7년간 5조4000억원의 시장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상 최대규모의 온라인 복권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저가구축으로 인한 부실 발생시 사업운영 자체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어 입찰가 하한선을 정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입찰가 하한선 제도에 대한 업체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 SI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기술 특성을 도외시 한 최저가 낙찰제와 이에 따른 저가입찰 경쟁이 과당경쟁과 덤핑수주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며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해 충분한 예산확보는 필수이므로 최소 예산을 보장해주는 입찰 하한가 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반대 의견도 있다. 현재 사업자 선정과정 자체가 선행 대기업에 유리하기 때문에 후발업체가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무기는 저가입찰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실제로 중견 SI업체 한 관계자는 “저가입찰이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평가위원 선정이나 관련정보의 수집 등에서 후발업체들이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가입찰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저 예산을 보장해 주는 것이 단순히 SI업체들의 수익성을 위해서만은 아니며 사업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SI 전문가들도 “평가과정에서의 투명성만 보장된다면 덤핑입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으며 이러한 노력을 시스템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이번 온라인복권 사업을 통해 선보인 입찰가 하한선 명시 제도가 국내 SI산업의 오래된 병폐 가운데 하나인 부실공사를 방지하고 사업자 평가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