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비디오시장에는 ‘흑수선’ ‘와이키키 브러더스’ 등 작품성과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들이 대거 선보인다.
먼저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은 반세기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한국전쟁의 비극에서 찾아내는 미스터리 액션물이다.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오 형사는 피살자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죽은 두 사람 모두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포로의 체포작전을 맡았던 것.
피살자의 유품속에서 낡은 일기장 한 권과 흑백사진 두 장을 발견한 오형사는 이를 토대로 세 사람에게로 살인혐의를 좁혀간다.
세 명의 용의자는 50년전 남로당 당원이었던 손지혜와 그녀의 연인이자 사건 발생 전날 출감한 비전향 장기수 황석, 마지막으로 빨치산의 우두머리였던 한동주다.
미스터리 구도로 일관된 영화는 50년 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동주가 과거를 감춘 채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일본 미야자키현을 수시로 넘나든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밤무대 밴드들의 무대 밖 삶 이야기를 진솔하고 가슴 시리게 엮어낸 임순례 감독의 역작이다.
7인조 3류 밤무대 밴드 ‘와이키키 브러더스’는 점차 생계에 어려움을 느끼자 해체위기에 몰린다. 멤버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결국 3명만이 충주의 한 호텔에서 연주를 하며 밴드의 명목을 유지할 뿐이다. 영화는 3류 인생의 평탄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진한 여운이 남는 수작이다.
신인 문승욱 감독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화제가 된 ‘나비’는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의 아픈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망각 바이러스’를 찾아 독일에서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으로 입국한 안나, 납중독 환자면서 임신 7개월째인 관광가이드 유키,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택시운전을 하는 K 등 세 사람이 우연히 조우한다.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 세 사람은 관광중에 갈등하지만 점차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사이로 변한다.
액션작 가운데는 ‘스파이더게임’과 ‘라스트캐슬’이 단연 돋보인다.
97년 개봉된 ‘키스 더 걸’의 속편격인 ‘스파이더게임’은 형사와 범죄자의 심리게임을 담은 모건 프리먼 주연의 정통 수사물.
워싱턴 경찰국 소속의 크로스 박사는 동료 여자 형사를 범인에게 위장해 접근시키는 작전을 펼치다 파트너를 잃고 만다. 이 충격으로 칩거하던 그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온다.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상원의원의 딸을 납치한 유괴범 게리 손지가 자신과 두뇌게임을 벌이자고 한 것이다. 크로스는 경찰 제시와 함께 납치 목적조차 불분명한 사건에 빠져들게 된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지성파 흑인배우의 표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모건 프리먼의 탄탄한 연기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라스트캐슬’은 로버드 레드퍼드 주연으로 ‘만약 전설적인 장군이 중죄를 선고받고 군형무소에 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하는 액션작.
군형무소인 트루먼교도소에 모든 군인의 영웅인 중장 어윈 장군이 수감된다. 교도소장 윈터 대령은 어윈의 카리스마를 누르기 위해 노심초사하지만 철두철미한 군인정신을 갖고 있는 어윈 장군이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윈터 대령은 결국 사고를 가장한 살인사건으로 그를 다스리려 하고 이를 안 어윈은 죄수들을 규합해 폭동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멜로나 에로물을 찾는다면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이 열연한 ‘물랑루즈’와 타이영화 ‘잔다라’를 추천한다.
‘물랑루즈’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일찍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를 주름잡던 향락클럽 ‘물랑루즈’. 이곳에서 간판 뮤지컬가수로 일하는 샤틴은 출세욕에 사로잡혀 공작에게 몸을 팔아 진짜 가수가 되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보헤미안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는 순진한 작가 크리스티앙을 만나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공작의 눈을 피한 그녀의 위험한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가는데….
종려시 주연의 ‘잔다라’는 30년 동안 판금되었던 타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근친상간, 동성애 등 파격적인 성을 소재로 한 데다 상영시간의 20%가 넘는 적나라한 섹스 묘사로 화제를 모아온 작품.
어머니의 숨이 끊기는 순간 태어난 아이 잔다라는 집안 여성을 모두 성적 대상으로 삼는 아버지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아버지의 욕망이 지배하는 집안에서 성에 일찍 눈을 뜬 잔다라는 새 엄마 분렁과 섹스의 쾌락에 빠져든다.
아버지가 이복 여동생 카우를 임신시키는 바람에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조건으로 카우와 결혼하게 된 잔다라는 집안의 권력을 거머쥐고 섹스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도 결국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섹스에 대한 집착으로 파멸해 간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