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와이퍼를 제조하는 A사는 지난해 12월 초 한 소프트웨어(SW)회사를 찾았다. 비용을 좀 들여서라도 최소한의 시스템 인프라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견을 조율해 보니 견적이 5000만원으로 나왔다. 정부보조금 2000만원을 감안하면 300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이 SW회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자금을 승인해 줘야 하는데 아직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게 SW회사의 설명이었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A사만의 얘기는 아니다. 중소기업이 ‘3만개 정보기술(IT) 지원사업’으로 정부보조금을 받으려면 최소한 한 달에서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한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11월에 신청한 기업이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원래대로라면 자금을 신청한 지 2주 만에 승인이 나오는 것이 원칙. 중소기업과 IT회사가 계약서를 작성,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에 서류를 제출하면 중진공은 기업 신용도 및 전산화 수준에 따라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자금을 결정, 통보하게 된다. 4개월 정도 지나 IT회사가 구축 완료 보고서를 제출하면 중진공에서 실사를 거쳐 지원금을 입금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부터 신청서류가 몰리면서 일정이 밀리고 있다.
한국하이네트의 경우 작년 9월부터 1300개 기업(기초정보SW)에 대해 자금신청을 했지만 승인을 얻은 것은 900개에 불과하다. ERP 역시 130개를 신청했지만 35개만이 자금 승인을 얻었다. 기초정보SW와 ERP 각각 500개와 250개를 신청한 KAT시스템도 신청건수의 70% 수준만이 승인을 얻었을 정도로 지연되고 있다.
특히 일부 IT회사는 “2주 내에 처리할 수 있는 분량만큼 적당히 알아서 서류를 갖고 오라”는 중진공 관계자의 요구에 따라 회사 안에 서류를 쌓아놓고 있는 실정이다. 중진공의 처리능력을 1주일에 500개로 가정하고 적정 수위에 맞춰 서류를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승인절차가 늦어지면서 중소기업은 물론 IT회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IT회사는 당초 프로젝트 일정보다 지연됨에 따라 자금순환에 애로를 겪는가 하면, 중소기업들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열심히 해서 계약을 했는데 정부에서 신속하게 후속조치를 해 주지 않아 원성만 듣고 있다”며 “그렇다고 중진공에 밉보일 수도 없고, 이래 저래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중진공은 한 번에 몇 천건씩 서류가 접수되는 데 비해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인력에는 한계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당초 예상보다 신청건수가 많은 데다 특히 서울·경기지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담당자는 “최근에 계약직 인원 12명을 충원(전체 54명)했기 때문에 상황은 호전될 것”이라면서도 “자금승인을 빨리 해 준다고 해서 IT회사들이 바로 인력을 투입, 지원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고 말해 여전히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중소기업을 비롯한 IT회사들은 결과적으로는 중소기업 정보화를 선도한다던 당초 취지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냐며 구조적인 차원에서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