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콘서트/정재승 지음/동아시아 펴냄
과학기술은 인류복지를 위해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근대사상가 막스 베버가 과학적 합리성이 확산될 현대사회를 ‘쇠우리(Iron cage)’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듯이 과학기술 발전의 미래상에 관한 양식 있는 학자들의 진단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특히 자연과학적 인식의 몰가치성을 문제삼아온 비판이론가들은 과학주의를 삶의 진정한 의미나 목표를 도외시한 도구적 사유로 매도했다. 이 결과로 삶의 조건 향상에 매진해온 과학과 삶의 의미 확충에 주력해온 문화 사이의 균열이 심화돼 양자는 각기 이성과 감성을 앞세운 상반된 활동노선으로 궤적을 달리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연한 수학공식을 방불케 하는 바하 음악의 형식미나 각종 벌레이름들이 운문적으로 배열된 셰익스피어의 희곡 구절을 탐미하는 순간 우리는 과학과 문화를 상극적 요소가 아닌 인간 정신세계라는 태반을 공유하는 화합적 산물로서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보공학이나 생명공학 같은 첨단 과학기술이 생활영역에 널리 파급돼 ‘과학의 문화화, 문화의 과학화’가 가속화하는 최근에 이르러서는 과학과 문화의 혼용이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과 문화 간 장벽이 강고히 잔존해 있다고 판단된다. 고등학교 중반쯤부터 이과반과 문과반을 갈라 교과과정을 분리하고 상호이동을 억제하며 대학에서조차 자연계·인문사회계·예체능계 등을 나눠 학제적 교류를 제약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젊은 물리학자 정재승 박사의 신작 ‘과학콘서트’는 ‘문화의 과학적 이해’에 해당하는 일련의 진술을 통해 학제적 단절의 불합리를 우리에게 역으로 일깨워주는 의미있는 저작이라고 생각된다. ‘복잡한 세상&명쾌한 과학’이라는 부제 그대로 이 책에서 우리는 ‘바하에서 서태지까지’라는 표현으로 일갈할 수 있는 고급 예술에서 흥행성 대중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현상들에 대한 저자의 번득이는 과학도적 기지를 확인할 수 있다.
‘경계파괴’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구가되고 있는 요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장르를 초월한 생각이나 주의주장으로 성과를 얻는 사례가 예전보다 많아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의 신작은 단순한 튀는 논변으로 독자의 관심을 자극한다든가 혹은 유명 과학자나 과학계의 에피소드를 재치있게 소개함으로써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찬하는 범속한 과학에세이들과는 몇 가지 점에서 변별된다.
먼저 저자는 과학과 문화의 관계가 예나 지금이나 긴밀하다거나 돈독해야 한다는 보련 명제에서 진일보해 복잡성이 날로 높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생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되 이때의 과학이란 종전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양한 신과학적 사고여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알리고자 하는 과학원리에 맞는 유효 적절한 사례가 실로 풍성하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가 오랜기간 남다른 주의와 공력을 투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매절 끝부분에 심화학습을 위한 참고도서나 사이트를 공들여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과학 대중화를 향한 저자의 높은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한걸음 나아가 아낌없이 주고받자는 저자의 개방적 지식관을 시사받을 수 있다. 과학지식이 날로 누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에 대한 신뢰가 사회적으로 공고화되지 못한 채 전래적 미신이나 새로운 주술이 횡횡하고 있음은 과학적 합리성과 문화적 타당성을 동시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이러한 개방적 의지가 아직 우리사회에 정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가시적 현상의 이면에 내재한 무의식세계의 발굴을 통해 인간 정신작용에 대한 이해를 일신시킨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경우에서 목도할 수 있듯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노력이란 과학과 문화의 만남, 말하자면 과학적 상상력과 문화적 상상력의 접점에서 출원하는 것임을 이십대의 젊은 물리학자는 ‘콘서트’라는 협주곡 형식의 에세이를 통해 독자에게 호소력 있게 피력한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 pkim82@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