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42)인류 진화와 정보통신(Ⅱ)

인류는 태초부터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많은 도구와 매체를 활용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신체적으로 오랜 진화과정에서 이루어진 직립보행이라는 특징을 통해서였다. 인간의 직립보행은 손을 자유롭게 했고, 그 손을 통해 임의롭게 도구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활용한 도구는 생활을 위한 도구와 사냥을 위한 무기 등 매우 다양하고 그 양도 많았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보전달을 위한 도구와 매체를 구분하여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우매한 일이다. 생존을 위한 활용이었으며, 통신행위 또한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류가 활용한 도구와 매체 중에 현재까지 변함없이 활용하고 있고, 인류의 진화에 큰 영양을 끼친 것은 구분이 가능하다. 그것은 불과 언어, 그리고 문자였다. 특히 불과 언어와 문자는 정보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로 활용이 가능했다.

 인간은 불을 발견하여 맹수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고 음식을 불에 데워 먹게 되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불을 사용함으로써 밤을 단축시켰으며 추위를 극복하여 멀리 한대지방까지 생활권을 확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불을 맹수로부터의 보호와 음식을 익히는 데만 사용하지 않고 통신을 수행하는 매체로도 활용하였다. 미리 약정된 신호를 통해 위치정보와 상황정보를 멀리 전달할 수 있는 통신방식으로, 전기를 이용한 통신방식 이전에 많이 활용된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또한 인류는 언어의 활용을 통해 스스로를 진화시켜 나갔다. 언어란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기호다. 화자가 청자에게 전하는 것은 기호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표현으로서의 통신으로, 청자는 같은 기호를 참조하여 화자가 보내는 통신을 해독하여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통신방식이다.

 언어는 인간과 인간의 정보교류를 위한 기본매체로 활용되었다. 정보의 생성과 전달, 정보 분석의 기본이 바로 언어였고, 기호와 문자도 결국은 언어를 기록해 놓은 통신방식이었다. 인간은 언어의 보편화와 정교화를 통해 인간다워져 갔고, 점차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초창기의 언어는 매우 천천히 발전되었을 것이다. 불규칙적이고, 간헐적이며 서로 답답하게 정보를 교환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세대를 두고 되풀이 이야기를 하고 듣는 가운데 하나 하나 다듬어지고 정형화되면서 줄거리가 만들어진 이야기로 활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드디어 1만년 전, 인류는 제각각의 언어체계를 완성시켰고 완성된 언어체계를 통해 자기의 경험을 함축시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경험을 제3자에게까지 전달할 수 있게 되어 인류의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인간의 언어는 성대, 입술, 혀 등을 통하여 음절을 세분하고 이것을 조합하여 의미를 가진 단어를 만들고 일정한 법칙에 따라 나열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언어는 통신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가공하여 인간 뇌의 기억범위까지 허용 가능한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언어는 정보교류를 위한 통신수단으로의 사용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사고의 세계에서도 언어는 추상능력과 사고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인간이 사용하는 통신수단은 언어만이 아니다. 언어 이외에 손짓, 발짓, 몸짓, 얼굴 등으로 감정, 의사, 지시 등을 표현하는 동작언어도 있다. 하지만 동작언어는 어떤 사항을 전달하고 의사를 소통하는데 그치고 만다. 언어와 같은 감정을 표시하고 정서적인 면을 표시하며 사상을 나타낼 수는 없었다. 이러한 언어는 발성에 의한 언어만이 가능했다.

 언어의 활용과 더불어 인류는 문자개발의 바탕이 되었던 상형기호도 정보전달을 위한 매체로 쓰기 시작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형태를 뼈나 나무, 돌 등에 새겨넣어 전달하는 통신방식이었다. 다행히 원시인들이 사용했던 상형기호를 이용한 통신방식에 대한 역사적 자료들은 많이 남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돌이나 흙에 새겨진 토템기호를 들 수 있다. 이들 기호는 특별행사나 의식에서 주로 젊은 세대의 교육과 감정의 표현 및 행동, 사건에 대한 정의와 의미부여의 구실을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토템기호란 원시인들이 신으로 숭배하던 크고 힘센 동물들의 회화적 표시를 말하는데, 이들 기호는 사람의 신분과 그 가족집단을 표시하는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 또한 이들 기호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주술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형기호들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프랑스에서 발견된 소의 동굴벽화는 4만년 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후 스페인과 북부 아프리카에서도 최근에 여러가지 동굴벽화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그 전에 발견된 것에 비해 상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북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의 동물벽화는 문자언어를 대신하는 일종의 원시적인 통신수단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상형기호가 이미 6000여 년 전에 통신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 유물 중에서도 상형기호를 활용하여 통신을 수행한 흔적이 나타난다. 점말용굴이나 두루봉 동굴에서는 뼈에 새겨진 사람의 얼굴, 짐승의 모습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눈과 입만을 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사람의 얼굴을 나타내는 데는 먼저 바탕으로 긴 뼈를 많이 택했고, 짐승을 나타내는 데는 긴뼈와 엉덩뼈, 뒤축뼈, 등뼈, 뿔들을 나타내고자 하는 모습과 비슷하게 생긴 뼈를 골라서 썼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몸 한가운데에 7개의 구멍을 뚫어 놓아 여성을 상징한 것, 흙으로 만든 인형, 납석으로 만든 조형조각 그리고 흙으로 만든 태두(太頭)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의 상징주의적 기법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문호리의 선각화는 납작한 자갈돌 위에 아주 섬세한 선각으로 물고기의 그림을 새겼고 이것을 다시 강물 속에 던져 넣었던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강의 물고기들의 더 많이 번성하고 또 잡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청동기시대에는 암각화 등에서 정보통신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 고령 양전동 알터부락의 암각화는 3중으로 된 동심원과 十자형 그리고 수면형 혹은 인간의 언면형과 같은 가면 등이 도안과 같은 방법으로 그려져 있다. 울주 천천리의 암각화도 원, 삼각형, 릉형 등의 도안 무늬의 동물 그림이 곁들여져 있다. 그리고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 거북 등의 물고기, 사슴, 범, 곰, 멧돼지, 토끼, 여우 등의 짐승과 사람이 그려져 있고, 사냥하는 장면이나 배를 타고 고래잡이를 하는 장면들도 그려져 있다. 특히 고령 알터의 바위 그림은 부호로 된 뜻글자라고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불과 언어와 기호를 활용한 뜻글자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던 인간은 일시적이고 편협적인 통신매체를 보완할 수 있는 통신방식을 고안해 냈다. 바로 문자를 이용한 통신방식이었다. 인간의 문자발명은 인간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고도 다음 단계로 빨리 진화할 수 있게 했다.

 비록 무제한적인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축적된 지식의 활용을 가능하게 한 문자의 발명은 불의 사용과 언어의 사용을 통해 진화를 거듭한 인류에게 정보의 축적을 통한 진화를 계속할 수 있게 했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