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그리고 문화콘텐츠산업은 21세기를 주도해 갈 핵심 창조산업이다.
정부에서도 이른바 CT를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육성, 반도체에 버금가는 수출 효자 품목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 가운데 애니메이션산업은 문화콘텐츠 수출의 주력 품목으로 지난 2000년을 기준으로 전체 문화콘텐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1.9%에 달할 정도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표참조
특히 애니메이션산업은 TV방영이나 극장상영 등 일회성 활용에 그치지 않고 비디오·캐릭터·게임·음반·완구류 등 관련 후방시장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콘텐츠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가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계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애니메이션 제작규모에 있어서는 세계 3위의 수준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떨친 우리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그동안 상당수업체들이 창작보다는 해외업체들의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에 안주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애니메이션 그래픽 하청 제작물량의 50%를 점유하며 호황기를 맞던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는 최근 중국·동남아·인도지역에 하청 물량을 빼앗기며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최근 문화부가 발표한 2001 문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지난 99년 8166만달러에 달하던 애니메이션 수출물량은 2000년에는 6533만달러로 19.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실적은 아직까지 집계가 어렵지만 업계에서는 수출 감소세가 더욱 커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따라 애니메이션 업계의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그동안 OEM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본 업체들이 이제는 매출 감소를 타계할 새로운 대안으로 창작애니메이션에 눈을 돌리고 있다. 단순 그래픽 하청 생산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기획에서부터 마지막 녹음작업까지 해내는 창작 작업만이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 2년간 국내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의 하청제작을 기반으로 하던 국내 메이저 제작사들이 창작기획 애니메이션의 개발 그리고 중소기획사 및 제작사들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또 CT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며 신생 애니메이션 제작사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하나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8년 60억원에 불과했던 창작애니메이션 순생산 규모는 2000년 300억원을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6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창작 애니메이션의 원년으로 평가받는 지난해에는 TV용, 극장용, OVA 등을 포함해 20여편의 작품이 출시되는 등 창작애니메이션시장이 크게 활성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그동안 불모지로 인식돼 온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올 한해 동안 50여편의 작품이 출시될 전망이다. 이에따라 창작애니메이션 시장규모도 지난해 600억원에서 올해는 1000억원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창작 열기에 비해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극장용 창작물인 ‘더킹’ ‘별주부 해로’ ‘런딤’에 이에 올 초 개봉된 ‘마리이야기’까지 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문을 닫고 만 현실은 업계가 직면한 많은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창작 분야에선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신생아나 다름없는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로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실패의 원인으로 국내 업체들의 국제경쟁력을 꼽고 있다.
세계 애니메이션시장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경쟁력을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기획·콘티작업을 진행하는 프로프로덕션 분야가 30, 음악·더빙작업 등 마무리 작업단계가 30으로 평가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문 시나리오 작가층이 엷고 직능별 전문화 및 분업화도 매우 부진한 상황이다. 또 배경음악 등 후반부 작업에 대한 예술적 감각 및 능력에 있어서도 세계 선진업체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다.
특히 내수시장만으로 수익성을 달성할 수 없는 국내업체들로서는 세계시장 진출이 필수이기 때문에 기획력 향상이 우리 업계의 최우선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국내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한 투자 활성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애니메이션산업이 문화산업의 핵심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 투자환경은 게임 등 일부 호황산업에 치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프로젝트 투자나 애니메이션업체들에 대한 지분 투자 등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또 내수시장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지상파의 애니메이션 방영 쿼터를 높이는 등 제도적인 지원도 요구된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절대 방영시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연간 총방송시간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과 신규 애니메이션의 창작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재방 회수에 따라 편성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등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대학 애니메이션 교육과 산업을 연계하는 산학협력과 3D 애니메이션 등 차세대 애니메이션 기술 개발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에대해 씨네픽스의 조신희 사장은 “창작애니메이션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열악한 투자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자금지원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골고루 배분되도록 부처별로 산재한 각종 육성 전략을 통합하는 효율적인 지원체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