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이미 98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해외 OEM 제작물량은 국내 하청제작시스템의 경쟁덤핑과 국내창작물의 해외 재하청붐으로 인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는 중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애니메이션 하청제작에 나서면서 경쟁력있는 인건비를 기반으로 국내시장을 지속적으로 잠식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세계 애니메이션시장에서 풀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급부상하면서 2D 애니메이션 조차 대부분의 제작과정을 전문적인 디지털 제작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이에따라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 기획제작 애니메이션들도 제작물량이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기존의 저가상품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방식에서 고가상품을 소량제작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같은 해외시장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는 국내 애니메이션업계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하청제작을 기반으로 한 경영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더이상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국내 메이저 제작사들은 창작기획 애니메이션의 개발 그리고 중소기획사 및 제작사들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무엇보다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투자 자금 마련이 시급하다.
애니메이션산업을 축으로 게임·방송·캐릭터 등에 기업의 역량을 확장시키며 원소스멀티유즈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해외시장 배급을 목표로 한 창작기획애니메이션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애니메이션 업체들이 코스닥 등록, 자본 유치 등을 통해 자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다행히 올해는 일반 창업투자회사와 펀드회사 이외에도 정부가 중심이 된 문화콘텐츠 투자기금이 본격적으로 지원될 전망이어서 자금에 대한 애니메이션 업계의 갈증을 다소 해소해 줄 전망이다.
또 내수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지난 98년 10월부터 시작된 국내 애니메이션 TV의무방영비율제를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TV의무 방영비율제는 국내 창작기획 애니메이션의 본격적인 투자와 제작을 활성화시킨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 시행과정과 국산 애니메이션 평가과정, 그에 대한 처벌기준은 더욱 강화시켜야 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이밖에 1월 초에 개봉된 ‘마리이야기’가 ‘절반의 성공’에 그침에 따라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시스템의 전환과 마케팅 타깃의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리이야기’는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 3D 배경디자인과 파스텔톤의 몽환적인 색채감각 등 차별적인 기법을 통해 국내 애니메이션의 제작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기여했다. 하지만 대중을 흡입하는 이야기구조의 정교함과 영화음악의 섬세함을 영상과 연계시키지 못해 대중들에게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따라서 올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는 ‘꼬마대장 망치’ ‘원더풀 데이즈’ ‘아치와 씨팍’ ‘엘리시움’ 등은 작품의 질적수준을 넘어 더욱 차별적인 마케팅과 배급력을 통해 관객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2002년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대외적인 위기와 함께 디지털 위성방송 개국을 통한 방송영상시장의 채널확대, 온라인 웹애니메이션 시장확대, 모바일콘텐츠의 상품개발 등 다양한 호재도 맞고 있다. 따라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기획창작 투자의 정교함’ ‘디지털화와 모바일화로의 확대’ ‘국내외 시장의 효과적인 배급 및 마케팅’ 등에 더욱 경주해야 할 것이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