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게임의 이해 / 최유찬 지음/ 문화과학사 펴냄
게임은 ‘양날의 칼’이다.
정보화 사회에 입문하기 위한 지름길임과 동시에 한번 빠져들면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는 함정이 곧 게임이다. 이런 관점은 컴퓨터 게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시각이다.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게임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릴 수만도 없다. 혹시나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마지못해 인정하고 마는 것이 게임이다.
그러나 게임이 갖는 효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를 체험하고 분석해보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이 책은 주로 오락이나 산업적 측면에서 다루어졌던 컴퓨터 게임에 대해 인문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컴퓨터게임의 비선형적 서사구조, 인터랙티비티, 공간중심의 지각방식 등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 관련 서적들이 실재나 이론 가운데 하나만을 집중 조명한 데 비해 실재와 이론을 적절히 결합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게임이 단순한 놀이나 오락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게임은 그 속에 세계의 형상을 추상적·구체적으로 축조하고 있고, 그에 따라 게이머는 게임을 수행하는 동안 일정한 현실체험을 한다는 것. 즉 모든 게임은 일종의 서사, 이야기의 프로그램을 내장하고 있으며 게이머가 게임을 실행할 때 그는 그 프로그램이 가능하게 해준 서사의 한 가지 형태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세대 국문과 교수인 저자는 이를 입증하듯 “게임의 경험이 자신의 독서경험에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진술한다. 예컨대 ‘토지’같은 방대한 소설이 하나의 공간 이미지로 포착되는 식의 새로운 경험은 게임 이후 가능해진 것이며, 이는 게임을 통해 습득한 텍스트 파악방식과 관계있다는 것이다.
게임을 실행하는 사람은 긴장속에서 게임세계 전모를 즉각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이 방식에 익숙해지다보면 게이머의 텍스트 파악방식이 종래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통상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문학을 읽으면서도 공간적 형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지각방식이 들뢰즈가 ‘시네마Ⅰ·Ⅱ’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마주’이론이나 노스럽 프라이의 신화비평에 나오는 ‘원형’의 개념, 동양의 텍스트 파악방식으로서의 ‘상(象)’개념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지각방식은 또 현대예술에서 공간형식이 중시되는 현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저자는 한국 근대소설에서 점차 강화되고 있는 공간지향성의 경향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컴퓨터 게임의 구조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사회적 기능을 인간의 지각 방식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또 국문학자인 저자의 관심 분야인 문학과 게임의 상관 관계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시대의 중요한 문화 형식의 하나이면서도 관심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컴퓨터 게임에 대한 본격적인 인문사회학적 논의를 이 책을 통해 제안하고 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