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한미 공동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과학기술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반도체·원천기술연구소의 함병승 박사(38).
양자결맞음초고속정보통신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함 박사는 초속 30만㎞에 달하는 빛의 속도를 45㎳로 제어하는 데 성공, 세계적인 물리학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최근호에 실리는 등 연구업적으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말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으로 선정돼 일궈낸 첫 성과입니다. 내년 말까지 초기 3년은 양자스위칭 기술의 아이디어를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데 전력할 방침입니다.”
함 박사가 이번에 발표한 성과는 히토류계의 고체 결정에 두 개의 레이저 빔을 쏴 빛의 속도를 늦추고 멈추게 하는 실험으로 광통신 분야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양자스위칭 기술에 활용될 수 있다.
초기 3년의 입증이 마무리되면 이 기술을 반도체에 적용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갈 계획인 함 박사는 “늦어도 5년 정도면 실용화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상용화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양자스위칭 기술이 상용화되면 기존 광통신에서 사용되는 변조기 속도인 40㎓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 속도 구현의 한계로 알려진 100㎓를 능가하는 T㎐급 속도의 구현이 가능해진다. 속도만으로는 최소 30배에서 최대 300배 가까이 빠른 광변조기가 선보이게 되는 셈이다.
함 박사는 이번 논문 발표에서 빛을 이용해 물질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검은 공진’이라는 물리학적 현상을 활용했다.
“검은 공진을 통해 빛의 굴절률 등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으며 빛의 흡수와 분산을 통해 레이저의 긴 파장을 짧게도 할 수 있다”며 “나아가 반도체의 청색 구현은 물론 자외선을 활용하는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함 박사는 단적인 예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DVD의 용량과 비교했다. 빛을 활용하는 양자스위칭 기술로 DVD의 메모리 용량을 10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으며 커다란 엑스레이 장비를 휴대형으로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광통신의 버퍼 메모리 분야에 적용하면 기존 들어오는 신호를 지연시키기 위해 광섬유를 수천㎞씩 늘려 사용하는 것이 필요없게 된다.
“암호와 관계가 있는 양자 관련 기술에 미국은 90년대 후반부터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투자액만으로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지만 특정의 새로운 분야를 선택한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양자스위칭 기술이 개발되면 산업적 파급효과는 거의 혁명에 가까울 것이라는 것이 함 박사의 시각이다.
“양자 스위칭 연구는 국내에서도 몇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와 병행해 양자컴퓨터 등의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경력>
△93년 미국 미시간주 웨인주립대 전기·전자공학 박사 △92∼95년 미 웨인주립대 교육 조교 △96∼99년 미 MIT 전자공학 리서치랩 박사후과정 △96∼현재 ETRI 선임연구원
<주요 연구>
△고체에서의 양자간섭(검은 진공) 최초 증명 △검은 진공을 이용한 광메모리 제안 및 증명 △희토류가 첨가된 크리스털을 이용, 양자스위칭 증명 △고체물질을 이용, 빛 정지·재생 최초 증명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