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예산으로 민, 군의 최첨단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는 미국 안보의 두 축인 미 국방부(펜타곤)과 미 중앙정보국(CIA)간에 실리콘밸리를 선점하기 위한 물밑작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펜타곤과 CIA의 목적은 단 한가지. 고급두뇌와 최첨단기술의 집합소인 실리콘밸리를 통해 나름대로 응용할 기술을 아웃소싱하기 위한 것. 대학과 정부의 내로라하는 연구인력이 벤처산실인 실리콘밸리로 몰려들고 있어 이곳을 놓치면 경쟁에서 뒤진다는 강박관념도 작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특성상 대학이나 정부 연구소보다는 당장 현장에 써먹을 수 있는 기술개발이 가능한 것도 요인 가운데 하나다.
펜타곤이나 CIA는 연구과제 형태의 연구비 지원이나 벤처 지분출자 등을 통해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실리콘밸리의 기술벤처들을 지원해 왔다.
먼저 실리콘밸리에 진을 치고 기술선점을 시작한 곳은 CIA. 각종 기발한 아이디어 기술로 정보전쟁에서 매번 승리를 거둔 바 있는 CIA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술정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을 실감, 자회사 성격의 비영리창업 투자회사인 인큐텔을 미 동부 벤처단지인 버지니아주 앨링턴에 이어 실리콘밸리 먼로차크에 3년 전에 설립했다.
인큐텔은 Q는 영화 007시리즈에서 매번 최첨단자동차를 개발해내는 연구책임자의 이니셜에서 따올 정도로 최첨단 기술소싱을 벼르고 있다. 조직원들도 공무원이나 전직 CIA요원들이 아닌 순수 민간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철저한 민간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제휴를 원하는 다른 벤처투자가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는가 하면 미국 전역의 연구소 및 대기업 연구원들과 정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CIA가 지금까지 인큐텔에 지원한 금액은 모두 우리 돈으로 대략 1200억원(9000만달러) 정도. 매년 3000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11 미 테러사태 이후 CIA의 첨단기술 확보가 당면과제로 떠오르면서 직원도 초기 20명 수준에서 40명으로 늘어났고 CIA 본부 내에는 13명으로 인큐텔 지원팀이 별도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업무는 실리콘밸리에서 조만간 출시될 기술들을 추적하고 이를 타 기관에 앞서 사전에 확보하는 것. 첨단기술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기술확보를 통해 CIA가 필요로하는 기술을 조기에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각종 기술정보를 가공해 낸다. 이를테면 기술정보를 캐내기 위한 CIA의 공작거점인 셈이다.
인큐텔은 지금까지 13개 첨단회사에 투자하고 20개가 넘는 기술을 사들여 CIA의 기술파트에 넘겼다. 투자한 회사의 제품은 회사 육성 차원에서 CIA가 우선 구매해 준다. 당연히 인큐텔 본부에는 투자를 받으려는 첨단기술업체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질 않고 있다. 속모르는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관계자들은 “CIA와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성공보증수표를 받은 것과 같다”고 평가하는 가 하면 이들로부터 전화받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이에 뒤질세라 펜타곤도 내년도 첨단기술분야의 지출을 늘리기로 결정하는 등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술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도브 자카임 국방차관보가 진두지휘에 나서 현재 전체 국방예산의 2.5%로 책정된 과학과 첨단기술 분야의 지출을 내년에 3%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차기 회계연도 국방예산안에 첨단기술분야의 지출증액을 의회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부시 행정부가 내년도 국방예산을 20년만에 가장 많은 400억달러 이상 늘려 총 3750억달러를 신청한 것을 감안하면 내년도 국방비중 첨단기술분야 지출을 3%로 늘릴 경우 첨단기술구입비로 수십억달러의 추가예산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자카임 차관보는 “그 정도면 실리콘밸리에서도 결코 하찮은 액수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새로운 전쟁 수행방식의 필요성에 따라 아이디어와 기술상품을 얻기 위해 군 당국은 앞으로 실리콘밸리를 더욱 주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의 현대화 계획에 따라 컴퓨터와 통신의 사용영역 확대를 추진중인 펜타곤도 “실리콘밸리와의 대화를 원한다”며 “실리콘밸리와 펜타곤은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해 실리콘밸리 첨단기술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사냥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펜타곤은 그동안 ‘군의 탈바꿈’으로 명명된 프로젝트에 따라 미사일 발사기능을 갖춘 무인전투기, 해저 폭발물 탐색용 무인선, 야전통신시스템, 인공지능 응용프로그램 등과 같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활용을 위해 실리콘밸리의 기술벤처기업들에 연구비를 지원해 왔다.
이같은 양측의 실리콘밸리 기술사냥에 대해 실리콘밸리 관계자들은 “어쨌든 맘놓고 기술개발할 수 있어 신나는 일”이라고 반기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한 펜타곤과 CIA의 경쟁이 첨단기술개발을 가속화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리콘밸리=패트릭 C.기자 patric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