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6)겉도는 재교육시스템

 “재교육이라구요. 승진시험 공부말인가요.”

 모 이동통신업체에 다니는 A 과장은 재교육 현황을 묻는 질문에 승진시험부터 떠올렸다. 매년 정기인사를 앞두고 벌어지는 때 아닌 ‘공부 열풍’에 홍역을 치르기 때문이다. A 과장은 회사가 직원 재교육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학점승진제를 도입하면서 이같은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A 과장이 말하는 재교육의 실상은 승진시험을 위한 공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평소 과다한 업무를 제쳐두고 교육을 받는 것은 ‘슈퍼맨’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실정. 대부분의 사람이 정기인사를 앞두고 ‘벼락치기’로 학점을 이수하다 보니 업무에 공백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또 ‘벼락치기 공부’에서 남는 건 학점밖에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 SI업체의 3년차 엔지니어는 그룹 내 재교육 프로그램을 보고 웃음부터 먼저 나왔다고 말한다. ‘홈페이지 만들기’ ‘포토숍’ ‘인터넷 활용’ 등 사회 초년생이나 배울 법한 프로그램이 커리큘럼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문적이라는 프로그램도 ‘eCEO 과정’ ‘e비즈니스 컨설턴트’ 등 원론적이거나 정체불명의 강의들이라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이 엔지니어는 재교육은 사무관리직이나 신입사원용이라며 고급기술인력의 재교육은 해외연수나 유학을 통하지 않으면 국내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저마다 고급인력양성을 외치며 도입한 재교육시스템이 겉돌고 있다.

 고급인력양성이란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직원을 옥죄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고급인재를 키우기는커녕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만 내고 있다. 기술인력의 경우 제대로 된 커리큘럼이 없어 거의 재교육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자 재교육 수혜자인 직원은 차라리 복지혜택이나 늘리는 게 낫지 교육은 무슨 교육이냐며 ‘재교육 무용론’까지 펴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산업기술인력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 한해 동안 기술인력 재교육을 위해 2조8000억원의 비용을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보다 양질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다는 것.

 하지만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제대로 된 시스템 없이 돈만 쏟아붓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또 엄청난 비용만큼 교육 내용이 실수요자들에게 꼭 맞는 ‘맞춤형 교육’이 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실제 삼성·LG·SK 등 대기업들은 그룹단위나 회사단위로 재교육기관을 별도로 마련하고 매년 수만명의 자사 직원들에게 재교육 혜택을 주고 있다. 또 중견기업들도 자체 교육팀을 운영하거나 대학이나 학원 등 외부교육기관과 연계, 재교육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을 받을 시간이나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간부들은 교육과 업무는 별개의 문제라는 마인드를 고수하고 있다. 일이 먼저지 교육은 부차적인 사안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재교육이 가장 시급한 실무자들은 교육은 엄두도 못낸다. 가뜩이나 업무량이 많은 이들로서는 그야말로 ‘슈퍼맨’이 되어야 재교육은 가능하다. 업무시간에 교육을 받기라도 하면 동료들에게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교육 프로그램의 부실도 ‘재교육 무용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회사내 재교육을 받아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무 원론적인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불평한다. 여러 직종별 사람들을 모아 한꺼번에 교육을 실시하다 보니 직무와 관련된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부분의 교육은 조직 관리나 경영이론 등 매니지먼트 관련 내용으로 채워져 IT 기술인력의 재교육은 그야말로 유명무실이다. 가끔 IT 관련 교육이 마련돼도 OS관련 소프트웨어 실무 등 지나치게 초보적인 수준에 그치는 게 다반사다.

 가뭄에 콩나듯 주어지는 해외연수나 유학 프로그램은 기회를 잡기가 ‘별따기’에 가깝다. 모전자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해외 연수 기회가 예산상의 이유로 워낙 적은데다 인사부 관계자나 중간 간부들이 독식해 기술인력이 기회를 잡기는 거의 힘들다”고 불평했다.

 그나마 해외연수 프로그램도 단기 연수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업들은 6개월에서 길어야 1년정도의 프로그램만 만들 뿐 2년이상의 학위과정은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있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아온 뒤 이를 발판으로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재교육이 가장 시급한 신규 프로젝트 인력에 대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례도 허다하다. 최근 e비즈니스를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들은 e비즈니스를 위해 구매·조달 등 기존 오프라인 인력을 차출,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하지만 e비즈니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은 없이 일단 업무에 부딪히며 일을 배우라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e비즈니스에 대한 개념조차 확립하지 못한 채 기존 오프라인 영역에서 배운 업무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이영현 박사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재교육은 진공관 시절의 교육 방식이나 커리큘럼으로 반도체 시대의 직원들을 가르치는 격”이라며 “변화된 환경에 맞춰 발빠르게 새로운 학습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한 재교육을 권장하는 선진국처럼 우리도 직종별로 좀더 세분화된 학습조직을 구축하고 이를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