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세계 D램 메이저업체간 ‘공생(共生)’을 위한 ‘공조(共助)’가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하이닉스와의 협의 차 방한한 울리히 슈마허 인피니온 회장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반도체업계 ‘빅4’가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혀 하이닉스-마이크론의 협상 외에도 업계 전반에 걸쳐 새로운 협력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업계 한 관측통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과의 협상에 직접 끼어들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빅4가 출혈경쟁을 지양하고 공생할 수 있는 협력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양사의 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이 타결되면 빅4 중 가장 불리한 것이 인피니온인 만큼 어떻게든 이번 협상을 깨고 자신도 살 수 있는 ‘공생’으로 몰아기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시각도 있다.
‘넘버1’인 삼성전자가 움직일지도 미지수다.
◇너만 살지 말고 나도 살자=인피니온의 주장은 빅4를 중심으로 같이 잘 살자는 것이다. 최악의 불황 속에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버티다 결국 오늘의 지경에 이른 만큼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공조가 필수적이라는 것.
더욱이 도시바를 포함한 일본 업체가 손을 들고 나갔고, 대만 업체는 아직 세력이 미약한 만큼 빅4만 협력하면 서로 시장을 분할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D램 시장의 수급 균형을 위해 최근 상위업체간 공급량 조절문제 논의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D램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과잉투자→공급과잉 및 수요감소→가격폭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도록 빅4가 보조를 취하자는 논의다. 매각이나 인수합병(M&A) 등 생사를 건 빅딜을 벌이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게 인피니온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협력은 자칫 대형 PC업체나 미국 정부로부터 담합이나 불공정거래행위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외 D램업체 관계자들이 공급조절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선택이 관건=공조체제의 키는 삼성전자의 손에 넘어가 있다. 마이크론과 하이닉스가 합병을 해도 ‘넘버1’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처럼 독주시대를 보장받고 있다시피한 삼성전자가 나머지(the others)와 한 배를 탈지 의문이다.
D램 시장점유율이 25%를 상회하고 있고 300㎜ 웨이퍼 일부 양산, 256M D램으로의 생산체제 전환 등으로 후발업체를 완전히 따돌린 상황에서 굳이 경쟁업체와 협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한한 슈마허 회장은 삼성반도체 고위 관계자와 만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도 D램 가격의 하락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공조체제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슈마허 회장이 방한 전에 삼성과 접촉했거나 실무 차원에서 접촉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슈마허 회장은 입국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의 협상 용의를 묻는 질문에 대해 “노 코멘트”라고 말해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물론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접촉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삼성전자와 나머지 ‘빅3’ 연합=업계 일각에서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막판 절충을 보지 못하고 삼성전자가 독주체제를 고집할 경우 나머지(the oters)인 하이닉스-마이크론 연합에 인피니온이 가세하는 3각 연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피니온은 300㎜ 웨이퍼나 0.12μ 이하의 첨단 공정기술을 갖고 있으며 256M D램에 강점이 있다. 주력인 128M D램 생산량이 충분한 하이닉스와 쉬링크기술이 우수한 마이크론에 인피니온이 가세할 경우 삼성에 대항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신뢰와 지속적인 가격상승이 담보돼야 한다.
3사 연합은 그동안 불가능했으나 이젠 D램 가격이 올라 상황이 달라졌다. 막판 협상에 진통을 겪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도 큰 출혈을 감수하지 않고 현 위치를 이어나갈 수 있는 연합구도에 솔깃해하고 있다.
D램 가격의 상승과 업계의 공생 분위기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은 물론 D램업계 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쳐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