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공동망 `무용지물` 위기

 지난 99년 9월 가맹점 공동이용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구축된 신용카드 공동망이 최근 무용지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신용카드 업계의 의무조항이었던 가맹점 공동이용제가 지난해 말 금융감독위원회의 완화조치로 사실상 법적근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맹점 공동이용제 시행이래 공동망에 가입하지 못해 이번 금감위 조치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신한은행은 최근 독자 전산망 확대와 가맹점 모집에 착수함으로써, 비씨·삼성·LG·국민·외환·현대·동양 등 7개 카드사와 극렬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당초 가맹점 공동이용제도의 도입취지 및 공동망의 활용도가 크게 퇴색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신규 카드사들의 시장진입이 이어질 경우 공동망을 둘러싼 선후발 사업자간 갈등도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4일 업계 및 관계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감위의 공동망 가입 의무조항 철회로 최근 신한은행은 신용카드조회(VAN) 전문업체들을 활용해 대대적인 가맹점 모집에 착수했다. 신한은행은 오는 하반기 카드사업부문 분리를 앞두고 6월까지는 가맹점 100만개를 모집할 계획이며, 현재 10여개 VAN사의 영업조직을 이용하고 있다.

 기존 공동망을 통하지 않더라도 신용카드 매입·정산이 가능한 네트워크 환경만 갖추면 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법적·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지금으로선 기존 공동망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카드사간 정산이 주역할인 신용카드 공동망은 만 2년이 지난 지금도 한달 전체 신용카드 사용건수의 1%에도 못 미치는 처리실적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달 평균 1억건을 넘는 카드 이용건수 가운데 90만건 정도만이 공동망을 통해 정산되는 형편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전표처리와 정산이 필요없는 무전표거래(DDC)로 직접 처리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 수년간 공동망을 소유한 선발 7개 카드사와 후발주자인 신한은행의 지리한 공방이 그 원인이 됐다. 엄청난 가입비를 요구함으로써 공동망을 일종의 시장진입 장벽으로 내세웠던 선발 카드사와 이를 수용하지 않았던 신한은행의 대립을 정책당국도 조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민간업체들의 자율적인 타협이 힘든데다, 이미 가맹점 공동이용제의 도입취지가 상당부분 퇴색돼 공동망 가입 강제조항을 풀 수밖에 없었다”면서 “결국 시장자율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십억원을 투자해 구축된 기존 신용카드 공동망은 앞으로 불량 가맹점 조회나 경보서비스 등 부가기능만 제공하는 것으로 전락할 공산이 커졌다. 또 정산을 위한 신규 공동망 구축도 완전 자율화됨으로써, 향후 신용카드 시장진입을 노리는 대기업과 은행권의 중복투자도 상당부분 불가피하게 됐다.

 산업연구원 심영섭 박사는 “정보통신설비가 사회 각 부문의 필수 인프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경쟁의 저해요소로 등장해서는 안된다”면서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개방이 필요한 분야와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조율할 분야를 구분하는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맹점 공동망 관련 일지

 97년 신한은행 포함 7개 신용카드사들 공동망 구축 합의

 99년 9월 신한은행 배제한 공동망 개통

 99년 12월 산동회계법인 통해 신한은행 가입비 1차 산출

 2000년 10월 아더앤더슨 통해 신한은행 가입비 2차 산출(247억원)

 2001년 3월 공정위 7개 카드사업자들에 경쟁제한행위로 인한 과징금 부과

 2001년 12월 금감위 여신전문금융업법 제23조 제2항 개정통해 가맹점 공동이용제도 강제화 조치 해제

 ◇신용카드 공동망이란=가맹점 공동이용제를 지원하는 신용카드사간 정산망. 이를 위해 여신전문금융업협회는 7개 카드사와 공동으로 지난 99년 4월 한국신용카드결제를 설립, 운영을 대행해왔다. 가맹점이 1개 카드사와 가맹점 계약을 맺더라도 모든 신용카드 전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매입사와 발급사간 정산업무를 담당한다. 지금은 정산 외에도 가맹점정보 및 매출전표 관리와 부도요청·철회관리, 부정가맹점 경계발령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