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5세대 TFT LCD양산 왜 서두르나

 지금까지 TFT LCD 투자확대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삼성전자가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돌아서 업계 전반을 긴장속에 몰아넣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초 유리기판 투입 기준으로 월 2만장의 5세대 TFT LCD 라인을 갖추고 2단계 투자도 내년중 돌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대해 경영설명회를 연 지난달 16일까지만 해도 이 계획대로 갈 듯했던 삼성전자가 며칠 사이에 돌연 태도를 바꿨다.

 5세대 TFT LCD의 양산시기를 앞당기는 한편 불투명했던 2단계 투자도 조기에 확정해 공격적인 투자에 들어간 것이다.

 투자계획 변경엔 그룹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서 대규모 투자의 경우 해당 사업부가 투자계획을 마련해 그룹의 결재를 얻는 게 일반적이나 이번 TFT LCD 투자 수정은 거꾸로 구조조정본부에서 투자확대를 지시해 사업부에서 세부계획을 짜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그룹이 5세대 TFT LCD 사업에 강한 의욕을 표현하고 있다.

 ◇왜 서두르나=삼성전자는 세계 TFT LCD 시장에서 부동의 1위다. 점유율도 99년 19%, 2000년 21%, 2001년 23%(추정치)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맞수인 LG필립스LCD가 4세대에 이어 5세대 TFT LCD에서도 먼저 양산에 들어가 생산 1위를 빼앗기게 됐다.

 4세대에선 그 기간이 3∼4개월이었으나 5세대에선 더 길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

 LG필립스LCD는 지난해 1조6000억원의 예산을 편성, 하반기부터 설비투자에 착수해왔고 이미 월 3만장의 5세대 라인을 갖춘 데 이어 연내 생산량을 월 6만장으로 늘리기 위해 2단계 투자에 들어갔다. 이제 1단계 투자에 들어간 삼성전자로선 6개월 이상 뒤처질 수밖에 없다.

 삼성의 자존심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5세대 투자가 무리라는 AU옵트로닉스, 중화영관, 퀀타디스플레이 등 대만업체들이 잇따라 5세대 투자를 선언하자 삼성전자는 투자확대 계획을 조기 확정한 것으로 풀이됐다.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결정은 국내 경쟁사인 LG필립스와 대만업체들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한 ‘양수겸장’인 셈이다.

 ◇문제는 없나=삼성전자의 투자계획 수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까지 1단계 설비도입을 마치고 9월부터 월 3만장의 5세대 TFT LCD를 양산하고 내년초 2단계 설비도입을 완료해 내년 3월부터 6만장의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외형상으론 지난해 투자를 보류하기 전의 원래 계획(당시엔 월 7만장 규모)대로 가는 셈이나 미정이었던 2단계 투자를 조기 확정함으로써 본격적인 투자를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이 계획으로 올해 최소한 12억달러(1조6000억원) 가량의 설비를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당초 계획한 7000억원보다 1조원 안팎 늘어난 금액이다.

 1조원은 삼성전자의 내부 유보자금으로 투자한다는 올해 총 투자규모 3조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아무리 자금력이 풍부한 삼성이라지만 부담스러운 금액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삼성은 최근 LCD 가격이 상승세를 타 과감한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을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 추월’의 야망을 가지고 파격적인 투자를 결심한 후발업체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은 이보다도 설비투자 경쟁이 본격화함으로써 자칫 공급과잉 전망에 따라 가격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삼성은 물론 LG필립스도 5세대 가동이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내년 이후라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의 또다른 과제는 일정을 앞당기는 데 부작용을 없애야 한다는 것. 삼성은 LG필립스와의 양산시점 차이를 좁히기 위해 시생산기간의 단축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들은 “지난해 투자만 결정하지 않았을 뿐 준비를 철저히 해왔기 때문에 일정을 앞당기는 데 따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