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산업은 이제 반도체에 이어 한국을 먹여살릴 산업 ‘0순위’에 올랐다.
세계 생산 1위인 브라운관과 LCD의 수출액은 지난 2000년 95억달러로 국내 총수출의 5.5%를 차지했다.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진다.
디스플레이 시장은 조만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제칠 것으로 관측된다. 매일같이 D램 현물시장 가격 동향을 들여다보는 국내 정책 당국자나 주식투자가들은 몇 년 뒤엔 디스플레이 가격 동향부터 먼저 살펴볼지 모른다.
디스플레이는 첨단 기술과 선행 투자가 중요한 장치 산업.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경쟁사와 피말리는 기술 개발과 투자 경쟁이 벌어진다. 국내 연구개발자들은 이전까지는 일등하기 위해, 지금은 일등을 지키기 위해 밤샘 연구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세계 일류가 됐다.
삼성과 LG는 국내 디스플레이 연구계의 양대 산맥이다. 앞선 기술과 최고급 인력, 연구개발 투자에서 두 회사를 따라갈 업체가 국내엔 없다.
삼성과 LG는 브라운관(삼성SDI와 LG필립스디스플레이)과 TFT LCD(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 PDP(삼성SDI와 LG전자), 유기EL(삼성NEC모바일디스플레이와 LG전자) 등 분야마다 맞붙어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장비나 부품 관계사까지 포함시키면 매우 복잡해진다.
라이벌인 삼성과 LG가 늘 경쟁만 일삼는 것은 아니다. 상용화 이전의 연구개발단계에선 서로 정보도 공유하면서 서로 격려한다. 기술이 복잡해지면서 관계사끼리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 같은 회사내에서도 경쟁한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분야의 연구원들은 자사의 연구원보다 경쟁사 연구원과 친할 정도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삼성과 LG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내 디스플레이 기술을 한두 단계 더 끌어올렸다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어느 한 기업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의 급성장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질적인 연구개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나 삼성과 LG의 디스플레이 사업과 기술개발 전략은 각각 LG전자의 구승평 부회장과 백우현 사장, 삼성종합기술원의 손욱 원장과 정선휘 부사장의 머리를 통해 나온다.
구승평 LG전자 부회장(60)은 국내 디스플레이산업계의 대부다. 그는 LG필립스디스플레이 대표로 홍콩에 나가 있다가 최근 복귀해 전공분야인 CRT는 물론 PDP,유기EL 등 LG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과 연구개발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이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백우현 사장(54)은 자타공인 ‘디지털TV전도사’다. 구 부회장과 함께 부품과 세트를 망라한 종합적인 디스플레이 기술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손욱 종기원장(57)도 최근 디스플레이 연구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한국이 ‘세계 디스플레이기술의 허브’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손 원장은 특히 SDI 대표시절 디스플레이의 매력에 푹 빠졌으며 반도체 중심의 종기원에 디스플레이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시절 기술본부장을 맡았던 정선휘 부사장(48)도 종기원에 합류했다. 그는 선행 기술을 찾아내고 미래 연구개발 방향을 잡아가는 최고리서치책임자(CRO)로, 손욱 원장을 보필하고 있다.
네 사람이 전략가들이라면 연구소장이나 개발팀장들은 야전사령관들이다. 이들은 휘하의 일선 연구원들과 직접 머리를 맞대며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한다.
삼성가의 야전사령관으로는 △SDI의 배철한 부사장, 정선휘 부사장, 정호균 전무, 심임수 전무 △전자의 석준형 전무, 정규하 상무, 김상수 상무, 김형걸 상무 등이 손꼽힌다. 이에 맞서 LG가에는 △전자의 박명호 상무, 박복용 상무 △필립스LCD의 강인관 상무, 브디만 사스트라 CTO △필립스디스플레이의 한수덕 상무, 프란츠 톨 CTO 등이 있다. 모두 실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다
배철한 부사장(50)은 오늘의 삼성SDI를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경북대 응용화학과 출신으로 지난 76년 입사 이후 줄곧 CRT 개발 분야에만 25년 동안 몸담았다. 초기 컬러 브라운관과 모니터용 브라운관 개발에서부터 최근의 멀티디스플레이브라운관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거의 없을 정도다.
PDP본부장, 천안공장장과 최근 준공한 중앙연구소장까지 겸임한 그는 이 때문에 개발과 생산 현장을 마당발로 뛰고 있다.
중앙연구소 개발1팀장인 정호균 전무(52)는 삼성SDI의 미래 기술을 책임진 인물. 풀컬러 유기EL로는 세계 최대 크기인 15.1인치 제품을 첫 개발해 소니를 비롯한 경쟁사와 세계 디스플레이 연구계를 놀랬다. 이 기술로 정 전무는 지난해 ‘한국디스플레이산업기술대상’ 산업자원부 장관상과 ‘자랑스런 삼성인상’ 기술부문 회장상을 받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일리노이대 등을 거쳐 미국 하니웰, 한국원자력연구소 등에 근무하다 지난 88년 삼성그룹에 스카우트됐다.
LCD사업팀장인 심임수 전무(48)는 STNLCD 전문가다. 지난해 컬러 휴대폰용 2인치급 6만5000컬러 STNLCD를 세계 처음 상용화, 새삼 연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이라는 STNLCD에 IMT2000과 개인휴대단말기 등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연구개발과 사업 구조를 가져가 지난해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30%를 달성했다. 상무 승진 1년만에 전무로 승진한 것에서 보듯 그에 대한 회사의 기대는 남다르다.
세계 TFT LCD 1위인 삼성전자 AMLCD사업부 개발실은 국내 평판디스플레이(FPD)기술의 산실이다. AMLCD사업부문 대표인 이상완 사장까지 엔지니어 출신으로 사업부 전체가 연구소 분위기다.
특히 석준형 전무와 김형걸 상무·김상수 상무·정규화 상무 등 ‘4인방’은 삼성을 세계적인 TFT LCD업체로 만든 일등 공신들이다.
석준형 전무(53)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드렉셜대 재료공학을 전공해 지난 96년까지 IBM왓슨연구소에 있었다. 이러한 그를 삼성이 LCD개발팀장으로 영입해 대화면 TFT LCD개발의 지휘를 맡겼다. 지난해 세계 LCD업계를 깜짝 놀래킨 40인치 TFT LCD도 석 전무팀의 작품. 삼성기술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에도 선정됐다.
성균관대 교수도 겸임하면서 산·학에서 동시에 활약하는 석 전무는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KIDS) 국제이사로서 대외 협력 업무도 열심이다.
김상수 상무(46)는 삼성반도체통신 시절 연구원으로 입사해 임원까지 오른 인물로 삼성 TFT LCD의 기술 역사를 말해 줄 산증인이다. 특히 그는 지난 98년 30인치 TFT LCD를 세계 첫 개발해 당시 세계 1위로 우뚝 선 삼성전자의 아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지금은 개발1팀장을 맡아 노트PC용 제품의 기술 전략을 짜고 있다.
김형걸 상무와 정규하 상무는 향후 TFT LCD기술의 핵심 과제인 전력 소모나 신재료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에서 초빙한 ‘특급 소방수’다.
김형걸 상무(49)는 당시 자동차 중앙연구소 전자기술팀장으로 삼성에 발을 디뎠으나 자동차 해체 이후 전자 AMLCD사업부로 소속이 바뀌었다.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 미국 디트로이트대 컴퓨터 공학 석사 출신.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려 패널에 집중된 삼성의 TFT LCD연구의 지평을 훨씬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규하 상무(50)는 선행 기술을 주로 다루는 연구팀장을 맡았다. 서울대 섬유공학과 미국 MIT대 고분자공학 석사와 재료 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여기에 선경합섬·다우코닝·SKC 등 다양한 실무 경험까지 갖춰 국내에선 보기 드문 전기전자 재료 분야의 전문가다.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취약한 삼성전자는 물론 국내 TFT LCD 연구계 전반에 걸쳐 큰 역할이 기대됐다.
LG의 디스플레이 연구는 LG전자와 LG필립스LCD, LG필립스디스플레이(LGPD) 등 3사가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LG는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삼성에 내줘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으나 연구개발 수준만큼은 세계 일류라고 자부한다.
LG디스플레이 연구계의 특징은 CRT 출신들이 많다는 점이다. 모태가 전자관사업(현 LGPD)이기 때문이다.
또 삼성에 비해 국제화했다. 합작선인 필립스측은 실질적인 연구개발을 LG쪽 사람에게 맡기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고문 형태로 전반적인 개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엔 문화 차이로 혼선도 빚었으나 서로 이해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
LG전자 연구 개발의 대표선수는 박복용 상무와 박명호 상무다.
최근까지 PDP개발에 집중했던 박복용 상무(57)는 최근 이 사업이 본격 생산단계에 접어들자 올해부터 유기EL사업 담당을 맡았다. LG전자에는 73년 입사해 줄곧 전자관 분야에만 일해온 ‘브라운관맨’이다. 하나의 일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엔지니어 스타일을 갖고 있다.
박명호 디스플레이연구소장(51)도 전자관 설계실 출신. 지난 97년까지 20여년간 각종 브라운관을 개발했으며 특히 와이드CRT와 완전평면CRT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PDP개발팀장을 거쳐 지난 99년 이후 디지털디스플레이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선행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이 주 업무다.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산학협동 이사도 맡아 산학 연계를 주도적으로 해오고 있다.
LG필립스LCD는 연구개발조직은 부디만 사스트라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강인관 안양연구소장이 호흡을 맞춰 이끌고 있다.
강인관 소장(53)은 지난 74년 금성사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디스플레이 특히 TV 관련 제품의 연구개발을 해온 디스플레이의 대가다. 시스템과 부품 모두 정통한 게 그의 장점. LG의 자회사인 미국 제니스에도 파견가 근무했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사스트라 CTO(52)는 현지 트리사크티기술대와 네덜란드 기술대를 거쳐 지난 78년 네덜란드 필립스에 합류했다. 주로 디스플레이 부품 분야를 연구해 왔으며 LG와의 합작사로 새출발한 LG필립스LCD에 연구개발 전략을 지휘한다. 국내 기업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외국인 CTO다. 시스템과 부품에 대해 두루 정통한 것과 합리적인 문제 해결방식이 그의 장점이다. 지난 95년에 네덜란드 왕립기술인협회 연구상을 수상했으며 네덜란드 시스템 & 컨트롤 협회 이사도 맡고 있다.
LG와 필립스의 CRT합작사인 LG필립스디스플레이의 연구개발도 양측의 리더들이 이끌고 있다. 한수덕 디스플레이R&D센터장과 프란츠 톨 CTO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