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 참관기-안철수 대표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대표(drahn@ahnlab.com)

 

 세계경제포럼 32차 총회가 현지시각 1월 31일부터 2월 4일까지 뉴욕 맨해튼에서 열렸다. 이 행사 역사상 처음으로 다보스가 아닌 곳, 특히 9·11테러가 있었던 뉴욕에서 개최됐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행사가 열린 호텔 주변을 경찰 몇천명이 둘러싸 블록을 형성할 정도로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

 어려운 상황에서의 리더십, 공유의 미래를 위한 비전이라는 주제를 표방한 이번 행사는 300여개의 토의가 진행됐다. 의제는 모두 6가지로, 보안증진과 취약성 제기(Advancing Security and Addressing Vulnerability), 사업상의 도전 재정의(Redefining Business Challenges), 빈곤감소와 평등의 증진(Reducing Poverty and Improving Equity), 리더십과 통치의 재평가(Re-evaluating Leadership and Governance), 지속적인 성장회복(Restoring Sustained Growth), 가치공유 및 차이존중(Sharing Values and Respecting Differences) 등이었다.

 세계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과 정책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고 국제 테러리즘 등 다양한 공격의 대응책, 기업의 재정을 보호할 수 있는지 등이 이슈로 제기됐다. 9·11테러를 계기로 대두된 개인인권과 공공안전 사이의 조율, 미국과 아랍권간 관계 재설정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이번 포럼은 이제까지 참가했던 행사와 다른 점이 몇가지 있었다.

 우선 행사성격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예전에 참가했던 세미나나 콘퍼런스의 경우 전문가들이 정리된 지식을 토대로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으나 세계경제포럼은 그보다 세계적으로 유력한 경제인과 정치인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친목을 강화하는 성격이 강했다.

 네트워킹의 비중이 크고 모인 사람들 또한 세계 정치경제면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큰 규모로 전개하고 있는 기업인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벤처경영인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형식면에서 통일된 결론을 내기보다 다양한 목소리로 문제제기와 의견개진을 하고 결론과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는 형식으로 진행된 점도 이채로웠다.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정치분야의 현안을 두루 다룬다는 점과 회의형식이 다양한 것도 두드러진 차이다. 패널토의, 분임토의, 식사를 겸한 토의 등이 동시다발로 진행돼 여러개 토의 프로그램 중 임의로 선택해 참가하도록 했다.

 국제적인 포럼에 참석한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 특히 철저한 경비속에 행사장에는 수행원이 들어갈 수 없었고 그 덕에 단시간에 수많은 유명인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케이스, 마이클 델, 힐러리 클린턴 등과 구애받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다.

 몇가지 아쉬운 점은 우선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점이다. 우리나라가 경제 특히 IT분야에서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하지 못하고 정치상황에 대해서만 피상적으로 알리는 데 그쳤다.

 미국과 백인 주도로 진행되는 점, 학식의 깊이나 전문성보다 재력이 영향력의 우선순위로 평가된다는 점 등이 낯설어 보였다. 우리나라나 필자가 매우 미미한 존재임을 절감했다. 통역만 해도 8개 국어(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가운데 우리말은 없었다.

 행사 자체에서 느낀 아쉬움은 운영이 미숙했다는 점이다. 처음 장소를 옮겼기 때문으로 이해되지만 등록때 1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했고 무선 PDA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불편을 겪어야 했다. 예약이 다 찼다는 이유로 원하는 토의에 참여할 수 없었던 점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좌석을 늘리거나 장소를 옮기는 등 융통성 있게 진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에 대해 모두 경이롭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세계 지도층에서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