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스페셜 베뉴 필름
1. 영화 매체의 다음 세대, 스페셜 베뉴 필름
2. 스페셜 베뉴 필름의 역사와 현황
3.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4.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1. 영화 매체의 다음 세대, 스페셜 베뉴 필름
1974년, 할리우드 한복판에 자리잡은 패러마운트 영화사. 구석진 회의실에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심상치 않은 이 마라톤 회의의 주제는 영화의 미래, 즉 영화 매체의 다가올 역사를 궁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임의 주인공은 약관 30세의 더글러스 트럼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패러마운트 영화사의 쟁쟁한 임원들을 앉혀 놓고 이 거창한 주제의 회의를 이끌고 있는 이 젊은이는 이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라는 영화의 특수효과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스타 기술자. 지금까지도 최고의 공상과학 영화로 손꼽히는 ‘블레이드 러너’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더글러스 트럼블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할 정도로 할리우드가 인정한 영화 기술의 전문가다.
“나에게 10년의 시간을 달라. 영화 매체의 미래 역사를 패러마운트가 쓰게 만들어 주겠다. 나는 지금, 공룡 할리우드가 새끼를 잉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패러마운트는 트럼블과 파트너십으로 ‘퓨처제너럴’이라는 회사를 설립,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이 젊은이의 열정에 찬 주문에 화답했다. 이 회사가 바로 흔히 ‘라이드 필름’으로 불리는 시뮬레이션 라이드 영화의 원조 쇼스캔엔터테인먼트(Showscan Entertainment)사의 모태다.
트럼블은 옳았다.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할리우드는 새로운 산업 ‘스페셜 베뉴 필름’의 아버지가 돼 있다. 그저 보고 듣는 영화를 넘어 타고 즐기는 영화, 영상이 가상 현실이 되고 관객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관객의 좌석이 의자에 맞춰 움직이는 라이드 영화나 고화질·고음질의 대형 스크린이 숨막히는 스릴을 선사하는 아이맥스 영화, 입체 안경을 끼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입체 영화 등의 산업이 지금 수십억달러 규모로 성장해 있다.
하지만 스페셜 베뉴 필름이 진정 영화 매체의 미래상인가. 라이드 필름, 아이맥스 영화, 입체 영화, 4D 영화 등 각각의 스페셜 베뉴 필름들은 나름대로 시장을 형성하며 성장해 왔지만 영화라는 고유의 매체는 여전히 독립적이지 않은가.
위 질문의 해답을 영화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 문화, 즉 극장 문화는 가정용 엔터테인먼트(home-based entertainment)와의 끊임없는 싸움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1920년대 라디오가 보급되자 성급한 미국인들은 당시 미국 가족의 저녁 오락거리로 자리잡은 ‘극장에 영화 보러 가기’가 종말을 맞았다고 선언했다. 저녁 식사 후 손에 손잡고 동네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거실에 모여 앉아 라디오를 듣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등장한 것이 유성 영화. 당시의 한 영화 포스터는 ‘그레타 가르보가 말을 한다’는 카피를 내세워 관객을 선동하고 있다.
1952년 미국 전역에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보급되자 이번에야말로 극장은 존폐의 위기에 처한 듯 했다. 거실에서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극장은 와이드 스크린, 컬러 영화 등으로 다시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처럼 라디오나 텔레비전, 즉 가정용 엔터테인먼트가 주지 못하는 즐거움을 극장이 줄 수 있는 한 관객은 존재했다.
비슷한 상황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고화질 HDTV와 극장식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가정용 극장(home theater) 장비를 200만∼300만원이면 갖추게 된 지금이야말로 극장은 영원히 관객을 잃을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스페셜 베뉴 필름에 대한 할리우드의 기대가 여기에 있다. 10층 높이의 대형 스크린이나 영상에 맞춰 움직이는 의자, 고화질의 입체 영상은 가정용 극장이 주지 못하는 즐거움이다.
이제 서른살을 바라보는 청년이 된 스페셜 베뉴 필름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그 해답이 그의 아버지인 영화 매체 안에 있다. 태생부터 영화 매체의 다음 세대로 정의된 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수연 옥토그라프 사장 sue@octograp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