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6)불법복제

 서울 영등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오 사장은 지난해 씁쓸한 경험을 했다. 손님중 한명이 온라인 게임을 하려는데 서버에 접속이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것.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시스템 오류이거나 온라인의 랙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응급 조치를 해봤지만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오 사장은 온라인 게임을 처음 설치할 때 정품 패키지에 포함돼 있는 CD 인증번호(CD키)를 누군가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설마 이것까지 불법으로 사용할까 하는 자신의 순진함을 탓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오 사장은 앞으로 CD키 관리를 철저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게임 마니아인 P씨는 지난해 용산에서 조립 PC 한대를 구매했다. 자신이 원하는 고사양을 선택해도 속칭 메이커 PC보다는 가격이 저렴했다. 하지만 정작 P씨의 계산은 다른 데 있었다. PC 조립상을 제대로(?) 선택만 하면 보너스로 엄청난 양의 게임을 하드에 불법으로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P씨는 발품을 팔기는 했지만 150만원짜리 PC를 구매하면서 최소한 200만원어치 이상의 게임을 불법으로 카피할 수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최근들어서는 그 내용물과 형태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불법복제의 대상물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인터넷 콘텐츠, 게임, 멀티미디어 파일, DB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형태도 기업형에서 개인형으로 빠르게 옮아가고 있다.

 기업형 불법복제는 검찰·경찰 등의 단속으로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개인형 불법복제는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상용 프로그램의 복제방지 장치를 푼 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불법으로 유포하는 와레즈(WAREZ) 사이트가 불법 복제를 조장하고 있어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숭실대학교 김광용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개인들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정품 사용률은 OS가 74.4%로 가장 높고 교육용 70.8%, 네트워크 관련 69.5%, 일반 사무용 65.0%, 유틸리티 62.3%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그래픽 관련 소프트웨어나 산업용·개발응용 분야의 소프트웨어 정품사용률은 각각 40.6%·47.1%·48.0% 등으로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표참조

 분야별로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정품 사용률이 전체적으로 낮다는 점을 보여 준다.

소비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전자상가 등지에서의 체감 불법 복제율은 이같은 통계 수치보다 훨씬 높다. 컴퓨터 AS 전문업체인 컴닥터119(대표 이병승

http://www.comdoctor119.co.kr)가 최근 전국의 600여 체인점을 상대로 소비자들의 소프트웨어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개인이나 기업 대부분이 불법 복제된 소프트웨어를 한두가지씩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용산 전자상가에서 판매되는 속칭 ‘깡통 PC’는 우리나라 불법 복제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들어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불법 소프트웨어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을 벌이자 용산에서는 OS를 탑재하지 않은 조립PC가 등장했다. 조립PC 업체들이 정부의 단속을 우려해 아예 OS를 설치하지 않고 깡통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이같은 깡통 PC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의 정품 사용이 늘었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깡통 PC를 구매한 사용자의 대부분이 스스로 불법 OS를 구매해 설치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조립PC 업체들이 해온 불법복제가 이제는 소비자 개인 단위로 넘어갔을 뿐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용산의 한 조립PC 업체 사장은 “지난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이후 OS는 아예 취급하지 않는 곳이 많아졌다”며 “소비자들도 대부분 OS는 알아서 하겠다며 깡통 PC를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용자를 겨냥이라도 하듯 용산 전자상가를 가로지르는 지하차도 주변에는 수백종의 불법복제 소프트웨어가 헐값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하루가 멀다하고 복제판 CD 판매를 알리는 메일이 쏟아지고 있다.

 왜 이렇게 불법복제가 만연할까. 정보통신부가 최근 홈페이지를 방문한 네티즌 1705명을 대상으로 ‘지적 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및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응답자의 64%인 1087명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이유로 ‘정품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고 답해 가격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됐다.

 실제로 이들 가운데 86%에 해당하는 1472명이 정품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응답했으며 적정하거나 저렴하다는 의견은 고작 14%에 불과했다.

 불법복제가 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드웨어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CD롬에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CDRW 드라이브의 등장은 소프트웨어나 각종 콘텐츠의 대량 복제를 가능케 했다.

 요즘 전자상가에서 판매되는 조립PC는 대부분이 이 CDRW 드라이브를 장착하고 있고 대기업 브랜드PC도 CDRW드라이브를 장착한 모델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등이 복제되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불법복제를 줄이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소프트웨어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개발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판매 가격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며 적정가격론을 제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가격을 낮추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개발업체와 사용자 모두 윈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전문가들은 또 불법복제의 주된 계층이 인터넷에 익숙한 청소년들이라는 점을 감안, 청소년들의 의식변화가 필수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기업체를 대상으로 단속 위주의 행정을 펼쳐왔던 정부가 이제는 단속보다도 개인 차원의 계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어떤 것이 불법복제인가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고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정품 소프트웨어 바로알기 Q&A>

 Q:쉐어웨어(shareware) 또는 프리웨어(freeware)를 다운받아 사용하는 경우 불법복제에 해당하나.

 A:쉐어웨어는 판매할 목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자가 통신망을 통해 다운받아 일정한 조건하에서 사용해 본 후 구입여부를 결정토록 하는 프로그램. 따라서 저작권자가 사용을 허락하는 조건하에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그 기간이 경과된 후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거나 복제했다면 불법복제에 해당한다.

 Q:온라인 통신망 또는 인터넷을 통해 유통시키는 경우 책임은.

 A:상용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복제할 수 있도록 온라인 게시판 또는 인터넷에 올리면 불법복제로 간주된다. 이 때에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올린 이와 내려받은 이, 이를 방조한 사업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Q:조립PC를 구입했는데 OS를 전에 사용하던 것으로 설치했을 경우 불법복제인가.

 A:전에 사용하던 OS가 패키지 소프트웨어라면 문제되지 않지만 메이커PC의 OEM버전이라면 불법복제에 해당할 수 있다.

 Q:정품 CD를 분실했는데.

 A:원칙적으로는 정품 CD를 다시 구입해야 하지만 정품소프트웨어를 구입했다는 객관적 자료만 있으면 됨. 예를 들면 세금계산서·납품확인서·구매계약서 등.

 Q:PC대수만큼 CD타이틀을 구입한 후 ‘버추얼CD’ 등을 이용해 각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사용하는 행위는 불법복제인가.

 A:PC수량과 동일한 정품 소프트웨어 수량을 구입해 사용하면 적법하다. 다만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서버에 저장한 후 네트워크로 여러 대의 PC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프로그램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Q:집에서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사용하던 것을 사무실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무실의 PC에 인스톨시켜서 사용하는 경우는.

 A:원칙적으로 불법이다. 해당 소프트웨어가 특정장소에서만 사용이 허락된 프로그램이라면 불법이지만 사용장소 및 용도에 대한 제한이 없을 경우에는 정품CD와 매뉴얼을 사무실에 비치하고 사용하면 적법하다.

 Q: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멸실·훼손에 대비해 복제한 경우도 불법복제인가.

 A:백업용 복제는 사용자의 정당한 권리이므로 적법하다.

 Q:메이커PC를 사용하다가 주요부품을 업그레이드 한 경우 처음 구입시 받은 OEM용 OS를 사용할 수 있는가.

 A:CPU 또는 주기판 등 PC의 주요 핵심 부품이 교체됐다면 OS프로그램도 다시 정품으로 구입해 사용해야 한다. 자료제공: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