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도노선은 직선을 추구했다. 직선이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력은 쌌지만 땅값은 비쌌다. 철길이 깔리는 대지를 적게 사들여야 했다. 그래서 장애물을 비켜가기보다 언덕을 깎거나 터널을 뚫거나 제방을 쌓는 일에 투자하는 편이 더 유리했다.
미국에서는 반대였다. 인구가 적어 노동력은 비쌌고 땅은 거의 가치가 없을 정도로 쌌다. 미국에서 철도 1마일을 까는 데 들었던 비용은 영국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미국은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아일랜드와 중국 출신의 이민노동자를 동원했지만, 험악한 지형은 물론 인디언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갖은 고초를 겪었다.
지난 92년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터넷사업에 있어 인건비는 쌌고 시스템 가격은 비쌌다. 그래서 컴퓨터시스템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만들어내야 했다.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 자체가 로스엔젤레스·먼로파크·산타바바라·솔트레이크시티 네곳에 있는 컴퓨터시스템을 공유하기 위해 연결한 것이다. 월드와이드웹이 널리 퍼지면서, 특히 닷컴시대로 접어들자 인건비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시스템 가격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닷컴기업들은 높은 인건비 부담도 아랑곳 않고, 매출도 없이 비용만 지출하는 ‘go west’를 계속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목재가 부족해 석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 곡물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사료도 값이 뛰어 가축의 노동력도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이에 석탄을 캐기 위한 수단으로 증기기관이 먼저 발명되고, 석탄 운반수단으로서 증기기관차가 등장한 것이다.
영국 의회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바탕으로 이런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산업혁명을 장려했으며 1846년 레일 간격 표준을 정하는 궤간법(軌間法)을 제정해 각 지방의 철도를 전국적인 교통수단으로 연결하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가 1850년 31번째로 연방에 가입한 데 이어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대륙횡단철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물론 1840년대부터 동양과의 무역이 증가하면서 교통수단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골드러시로 보듯 서부의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려는 욕구가 컸다.
이에 연방정부는 철도회사에 철도 건설에 필요한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자작농지법·식목법·사막개발법·토지법같은 법률을 잇따라 제개정해 서부이주를 장려했다. 이같은 정책은 1930년대에 등장한 존 케인스의 ‘일반이론’과 맥이 닿는다. 인터넷의 탄생은 비용이 비싸고 회선이 끊어지면 통신이 끊기는 회선교환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패킷교환방식의 아르파넷에서 비롯됐다. 영국에서 비싸고 관리하기 어려운 가축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증기기관차가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이리저리 엮어주는 거대한 거미줄인 월드와이드웹을 서부의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완성된 미국의 대륙횡단철도에 비유하는 것은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닷컴시대의 종언’은 웹(WWW)이 ‘넓다’(wide)는 것만 알고 ‘험하다’(wild)는 것을 몰랐기에 빚어진 비극이다.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한 팀 베르너스-리가 과학자가 아니라 사업가였다면 ‘월드와이드웹’이 아니라 ‘월드와일드웹’(World Wild Web)이라고 이름붙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