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e-book)은 과연 문화계에 혁명의 바람을 불러올 것인가.
디지털기술의 발전 및 인터넷의 활성화와 함께 탄생한 전자책은 지난 99년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인터넷을 통해 파일형태의 콘텐츠를 다운로드해 읽는 전자책은 책의 미디어를 종이에서 디지털파일로 바꿔놓는 미디어의 전환을 통해 출판계뿐만 아니라 문화·교육,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혁명적인 힘을 갖고 있다.
특히 문자뿐만 아니라 음성·그림·동영상 등 멀티미디어화한 텍스트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컴퓨터기술을 이용한 양방향성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콘텐츠산업의 집합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따라 전자책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반스앤노블·랜덤하우스·타임워너·아마존·넷라이브러리 등 내로라 하는 온오프라인 미디어기업들과 마이크로소프트·어도비시스템과 같은 거대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전자책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문열·이인화·신경숙 등 내로라 하는 기성작가들이 신작을 전자책으로 발표하며 전자책 붐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수십여개의 전자책 전문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으며 정부도 전자책을 디지털콘텐츠산업의 핵심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전자책시장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실제 산업계의 현실은 아직까지 초라하기 그지없다. 전체 출판시장이 1조5000억원대에 육박하는 것에 비해 전자책시장은 채 50억원에도 못미치는 등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의 위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목소리만 높을 뿐, 혁명의 조짐은 출판시장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업계의 열악한 현실=지난해 전격 합병한 와이즈북토피아(대표 김혜경·오재혁 http://www.booktopia.com)는 합병 이후 업계 선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난해 매출이 고작 15억원에 그쳤다.
또 지난 99년 가장 먼저 전자책시장에 뛰어들며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바로북닷컴(대표 이상운·배상비 http://www.barobook.com)은 10억원, 그리고 대표적인 후발주자인 드림북(대표 김영인 http://www.dreambook.co.kr)은 매출이 고작 5억원 수준이다.
이처럼 전자책분야의 주요 선두업체들의 매출을 모두 합쳐 3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전자책시장은 아직 산업으로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나 출판업계가 전자책산업 활성화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 시장은 빛좋은 개살구였던 셈이다.
따라서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지 않을 경우, 국내 전자책시장은 제대로 개화하지도 못한 채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시장 활성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양한 콘텐츠 확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전자책은 7만여권에 달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네티즌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문학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종이책과는 확연히 다른 전자책다운 전자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자책은 각종 멀티미디어기능이 총화된 디지털콘텐츠의 집합체다. 따라서 각종 IT기술을 충분히 구현, 전자책 다운영역을 독자에게 확고시 심어줄 때, 수천년간 종이책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시된 대부분의 전자책은 단순히 종이책을 디지털파일로 옮겨놓은 수준에 불과해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플래시 등 멀티미디어기능을 부각시킨 아동용 전자책이 최근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전자책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갖고 있는 오프라인 출판업체와 전자책업체들의 폭넓은 공조체제 구축도 시급하다. 아직까지 상당수 오프라인 출판사들은 전자책을 종이책과 경쟁관계로 인식해 신작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주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영화·잡지 등 다른 미디어분야에서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공생관계를 유지할 때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발휘해했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출판사들도 전자책에 대한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독자들이 전자책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전자책의 주된 미디어로 사용되는 데스크톱PC와 노트북PC는 종이책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휴대할 수도 없어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독성을 높인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비롯해 PDA·이동통신단말기에서도 전자책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자책 표준화 등에 업계가 공동대처해 나가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전자책의 포맷은 XML·PDF·HTML·FLASH·DVI·PBI·BRB 등으로 독자들의 편의성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살 때마다 각 회사에서 제공하는 뷰어를 다운로드해 설치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전자책 활용을 주저하게 된다. 특히 개별업체들이 제각기 다른 포맷을 기반으로 기술개발과 함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복투자에 따른 폐해 또한 심각하다.
정부의 전자책 지원 정책도 부처간 업무 조율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정부의 지원과 관련, 지식정보산업의 핵심분야인 전자책의 인증과 납본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종이책과 CD롬 타이틀이 정부의 인증과 납본 사업을 통해 부가세 면제 혜택을 받듯, 이같은 제도를 전자책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에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밖에 보안솔루션의 개발과 전자책 관련기술의 개발, 저작권문제, 전자책업체에 대한 투자확대 등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서둘러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