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업체 "우리가 만들면 다르다"

 ‘냉동자판기, 방서복(防暑服), 전기온풍기는 반도체 장비업체가 만들어야 제대로 만든다.’

 얼핏보면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첨단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가 냉동자판기나 전기온풍기를 만들다니.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이듯 상품개발에 대한 배경설명을 들으면 손바닥으로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에어컨 전문업체 만도가 김치냉장고라는 걸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것과 같은 이치다.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냉각, 열교환 기술이 냉동자판기, 방서복, 전기온풍기 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분야에 진출한 코삼, 메카텍스 등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만들면 다르다’고 외친다. 코삼은 칠러 제조기술을 활용해 냉동자판기를 만들었다. 반도체 제조공정 중 냉각장치로 쓰이는 칠러를 생산하는 이 회사가 냉동자판기를 만드는 건 땅짚고 헤엄치기.

 칠러에는 냉각도 냉각이지만 냉각중 온도차이를 0.1도로 유지하는 특수기술이 요구된다. 때문에 영하 20도 이하를 유지하는 냉동자판기의 개발은 그야말로 발명축에도 못낀다. 즉 냉동자판기의 기술은 칠러에 비해 지극히 단순할 뿐만 아니라 자사가 축적한 저온환경 조성 및 온도유지기능을 내장하면 여타 자판기회사가 만드는 제품보다 성능 및 신뢰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코삼은 이밖에도 반도체 냉각기술을 응용한 방서복도 KAIST와 민관군 합동프로젝트로 개발중이다. 이 제품은 무더위에 장갑차 및 탱크에 탑승하는 군인이나 용광로 주변에서 일하는 산업근로자에게 제격이다.

 테스트핸들러, 유기EL 점등검사장비 등을 생산하는 메카텍스는 전기료를 40%까지 절감할 수 있는 신개념 전기온풍기를 만들었다. 물론 여기엔 반도체 장비사업에서 축적한 첨단 열교환기술이 내장됐다.

 이 제품에는 우주선이나 초소형 노트북PC에서 열교환 수단으로 사용하는 히트 파이프(heat pipe)기술이 사용됐다. 가장 효율적인 열교환 기술로 평가받는 히트 파이프 기술이 보급형 난방기기에 적용된 건 세계에서 처음이다. 여지껏 이 기술이 난방기기에 활용되지 못한 것은 초고난도 기술로서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카텍스는 미국, 일본에서 만든 것과 성능은 같은 반면 가격은 10분의 1수준인 히트 파이프를 개발, 이를 난방기기에 적용했다.

 히트 파이프는 특수처리된 진공구리관으로 초고속 열전도(0.9초), 높은 열보존율과 잔열 유지율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열전달 특성이 뛰어나 열주입 후 6, 7분이 지나면 온도는 기존 스테인리스 관이나 일반 구리관에 비해 8배가 높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당연히 열효율성면이나 전기료 절감면에서 일반 난방기기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들 반도체 장비 업체 외에도 가스 정재장비 전문인 아토가 10여년간 쌓아온 기술력을 활용해 순도 99.9999∼99.99999%의 가스정재 및 공급사업에 도전할 예정이다. 또 반도체 트랙공정용 실시간 검사장비 전문인 어플라이드비전텍은 초미세 비전기술을 대형 선박엔진의 피스톤 장착분야에 적용, 위험성 높은 수작업을 대신하도록 하는 등 반도체 장비분야의 노하우가 산업·가정용 분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