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영진 이문칠 사장

요즘 세간에는 MBC의 월화 드라마 ’상도(商道)’가 화제다. 의주라는 도시에 근거를 둔 작은 기업 ’만상’이 요즘으로 치면 재벌기업인 ’송상’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조선 최대의 상단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최인호씨의 원작 소설을 극화한 만큼 구성이 탄탄하고 진행도 군더더기가 없어 인기다. 더욱이 주인공 임상옥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상도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 ‘보통 사람의 영웅’을 연상시키는 감동이 있다.

 영진닷컴의 이문칠 사장(59세)은 ’출판계의 임상옥’이란 평을 자주 듣는다. 처음에는 컴퓨터 ,.///학습 서적이라는 작은 틈새시장에서 출발해 이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IT 전문 출판사를 키워냈기 때문이다.

 15년동안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상도를 지켜 출판업계의 거목으로 우뚝 선 그의 인생 역정도 닮았다.

 이 사장이 처음 IT서적의 출판사업을 생각한 것은 80년대 중반. 지금의 윈도 세대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16비트의 286 컴퓨터가 유행했던 80년대 후반, 컴퓨터 사용자들은 운용체계 DOS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툭하면 시스템 소스가 부족하고 각종 하드웨어 장치들과 충돌을 일으켜 다운되는 MS-DOS와 씨름해야 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렇다할 가이드 북은 물론 제대로된 학습서도 없었다.

 “80년대 중반 사업 때문에 해외에 자주 나갔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지로 출장을 가면 꼭 서점에 들렀는데 컴퓨터 관련 전문 서적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데 놀랐습니다. 그래서 머지 않아 한국에서도 컴퓨터 서적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인란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장사가 된다는 확신이 생기자 이 사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곧바로 컴퓨터 전문 출판사 설립에 나섰다. 물론 첫번째 프로젝트는 당시 일반 사용자들의 골칫거리였던 MS-DOS. 이 사장은 몇년의 노력 끝에 87년 영진출판사를 설립하면서 ‘MS-DOS 입문’이라는 첫 작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영진닷컴 최초의 히트작인 이 책은 학습서로서는 드물게 1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가면서 영진출판사를 출판업계의 다크 호스로 부상시켰다.

 ‘MS-DOS 입문’의 성공으로 종자돈을 마련한 이 사장은 88년 영진출판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섰다. 이후 영진이 내놓는 서적들은 컴퓨터 학습서 분야 베스트 셀러 판매 기록을 잇따라 갈아 치웠다. 지금은 모든 출판사가 따라해서 식상한 측면도 있지만 IT 도서의 ‘따라하기’ 시리즈의 원형을 만들어 낸 것도 영진이다. 특히 지금까지도 영진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은 ‘할 수 있다’ 시리즈는 한 해에만 400만부가 판매되는 등 IT 출판업계에서 숱한 신화와 기록을 세웠다.

 물량 측면에서도 영진은 다른 출판사의 추월을 허락하지 않았다. 영진은 지난해 400종의 서적을 출간한 것을 포함해 지난 15년동안 총 2200종의 서적을 내놓았다. 최근 몇년 동안에는 하루에 한권 정도의 서적을 양산해 낸 셈이다. 고작해야 직원이 150명 정도인 영진이 이같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출판업계는 영진 특유의 역동적인 기업 문화를 성공의 이유로 꼽는다. 영진에서 책을 출판할 경우 그 책임은 철저히 기획자가 진다. 실무자가 책을 펴낼 때 이 사장이나 한상진 부사장에게 구두 보고만 하면 끝이다. 회사조직 자체가 수평적으로 짜여져 있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아웃소싱함으로써 조직의 탄력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조직에서 영진의 파워가 생겨난다.

 물론 이같은 바탕에는 이 사장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비즈니스 마인드가 깔려 있다. 이 사장은 고루하고 보수적일 수 있는 출판사로서는 드물게 벤처시스템을 도입했다. 불필요한 관리 인력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기획하는 사람을 늘리는 한편 이들에게 소사장 같은 독립성과 인센티브를 주었다.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하며 결국 책을 만드는 것은 사랍입니다.”

 책과 사람에 대한 이 사장의 사랑과 관심이 현재의 영진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다. 평소 직원들에게 ’샐러리맨이 되지 말고 비즈니스맨이 되라’고 강조하는 이 사장은 싹이 보이는 후배를 키워주는 출판계의 대부로도 유명하다.

 한때 그의 그늘에 있다가 이제는 독립해 사장이 된 사람이 10여명에 이른다는 점이 사람에 대한 사랑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 사장의 경영철학을 웅변해준다.

 지난해 코스닥 등록과 함께 매출 400억원을 돌파한 이 사장은 올해 해외 수출과 디지털 시대를 대비한 전자책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지난해 시작한 수출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영진은 지난해 이미 미국의 헝그리마인드사와 ‘포토샵 웹 문자 디자인’이라는 책의 영문판 수출 계약을 체결해 전세계 40개국에 서적을 판매했다. 중국의 경우 중국청년출판사와 50권의 IT적서을 중국어로 출간키로 했다.

 이 사장은 우리의 IT서적을 세계 일류상품으로 키워낸 셈이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분야에서 이루어낸 쾌거다.

 “책이라는 문화상품이야말로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산업입니다. 우리가 문학작품이나 학술 분야에서 세계 일류상품의 반열에 오를 만한 책을 만들어 내기에는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IT기술 수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세계적인 선진국이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서적은 아니더라도 사용자를 타깃으로 한 IT학습교육 서적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사장의 눈에는 세계 곳곳이 영진의 IT 서적을 수출할 시장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서적의 해외 수출은 침체된 출판업계의 활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출판인 스스로 한국의 문화와 기술을 책에 담아 수출하려는 신선한 기획과 공격적인 해외 마케팅에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먼저 질책하고 특히 출판업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출판 미디어 그룹을 꿈꾸는 거상(巨商)다운 면모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

 

  <이력>

  1943년 평안북도 생

  1994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최고 경제과정 수료

  1987년 영진출판사 설립

  1998년 ㈜영진출판사로 법인변경

  2000년 ㈜영진닷컴으로 상호변경

  현재 ㈜영진닷컴 대표이사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

  한국 전자책 컨소시엄 협회 부회장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PICCA) 이사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부회장

 

  <수상경력>

  1996년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

  1998년 대통령상 표창

  1994, 98년 국세청장 표창

  1999년 국방부 장관 감사패 수상

  2000년 법무부 장관 감사패 수상

  2001년 정보화 유공자 포상 정보통신부장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