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이 올해 산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김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을 다짐하면서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윤리경영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대통령 직속으로 부패방지위원회가 뜨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윤리경영 자율프로그램이라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준법감시인제도를 추진하고 있으며, 조달청은 청렴계약제를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산업자원부는 윤리경영시스템을 정착시키고, 500대 기업을 우선으로 윤리경영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한다. 심지어는 클린벤처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야단이다.
비리의 대명사처럼 인식돼온 재벌과 대기업은 정부의 서슬퍼런 윤리경영 방침에 덩달아 동참선언을 하기에 바쁘다. 각종 게이트로 얼룩져 국민 볼 낯이 없어진 벤처들은 스스로 윤리경영을 선포하는 등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태산이다. 윤리경영이라는 대명제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새로운 규제가 양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각 부처가 준비 중이거나 내놓은 것만 해도 이 같은 걱정이 결코 우려만은 아닐 듯싶다.
자율준수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하고, 윤리경영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준법감시인도, 윤리경영 담당임원과 직원도 선임해야 할 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부의 화두는 투명성이었다. 국치로 여겨지는 IMF가 기업의 투명성 부족 때문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그래서 사외이사제와 회계감사를 강화하고, 연결재무제표를 도입하고, 순환출자를 제한했다.
기업의 투명성 제고라는 DJ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하루 아침에 윤리경영으로 바뀌어 버린 느낌이다. 잘 모르겠지만 각종 벤처게이트가 터져나오면서 대기업 위주의 투명성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각 부처의 과잉반응이 한몫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김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을 외치면서 전자정부를 실현해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산자부가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정보화가 경영투명성 향상에 큰 효과가 있다고 나왔다.
물론 투명성이 윤리경영의 전부일 수는 없다. 아무리 기업 장부가 투명하더라도 현장의 비리가 반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윤리경영의 명확한 개념은 잘 모르겠지만 각 부처가 제시하는 해외 사례를 보면 내부 인식 제고와 자체 감시 강화가 골자인 것 같다. 윤리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만큼 강한 곳도 드물 것이다. 더불어 법보다 정을 앞세우는 정서를 중시하는 국민도 우리밖에 없다.
윤리경영은 인식보다 실천의 문제다. 기업정보화는 업무효율 향상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의 강점이자 약점인 정서가 용인되지 않는 투명성 확보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투명성이 확보돼야 윤리경영도 가능하다. 실천을 담보할 수 없는 윤리경영의 외침 속에 투명성의 첩경인 정보화가 소홀히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성호 디지털경제부 차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