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3D인가.’
최근 2∼3년간 국내 애니메이션업계는 2D 셀 애니메이션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나 3D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으로의 이동이라는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 애니메이션 하청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면서 20년간 애니메이션 산업을 이끌어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2D 셀 애니메이션의 전체물량이 감소하고 컴퓨터그래픽에 기반한 3D 애니메이션만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업체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이나 유럽 박스 오피스에서 1∼2위를 다투는 애니메이션물이 대부분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단 한국에 국한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변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3D 애니메이션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많은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먼저 창조적 인프라의 미흡을 들 수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선보인 3D 중심의 국내 애니메이션 ‘런딤’이나 ‘마리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영상을 새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기술은 거의 세계적인 수준에 달했으나 그 안에 담긴 스토리는 아직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만한 코드를 품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작품의 컨셉트, 시놉시스, 시나리오 완성 등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분야에 대한 시간 및 인적, 물적 투자가 미흡한 국내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본다.
둘째로 해외시장을 목표로 하는 기획력과 마케팅력의 부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영상물 시장 규모가 세계시장의 1% 미만에 불과한 점을 고려할 때, 3D 애니메이션 판매의 지향점은 당연히 세계시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 제작사들은 아직까지 한국적인 접근과 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밖에 TV용 애니메이션의 1차 수요자인 방송사의 국내 애니메이션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한 인식부족,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유아와 어린이용으로만 규정하는 대중의 인식 등도 3D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위해 극복돼야 할 과제다.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는 슬로건은 애니메이션, 특히 3D 애니메이션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극장용 영화 한 편당 500억원에서 1000억원까지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미국이나 유럽의 3D 애니메이션과 견주어 볼 때 한국 3D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은 그들보다 10분의 1에서 20분의 1의 비용만으로도 거의 같은 수준의 기술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적어도 세계 선진업체들과 일직선상에서 함께 출발할 수 있는 준비는 갖춰졌음을 뜻한다. 중요한 건 그 기술이 담고 있는 내용, 즉 드라마이고 그걸 감싸고 있는 외장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세계인의 감성, 즉 인류 보편의 정서를 의식한 스토리 구성과 캐릭터 설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또 정부와 기업이 3D 애니메이션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 등의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3D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와 달리 기술로 창조해낸 캐릭터들의 무국적성, 혹은 다국적성으로 국경을 초월한 호응을 얻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이 좁은 아시아 시장에서 벗어나 북미, 유럽, 아프리카에까지 판매 활로를 넓힐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문화 콘텐츠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땀과 아이디어로 만들어 낸 애니메이션이 세계시장에서 좋은 가격과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세계인을 의식한 제작과 마케팅, 배급이 전제돼야 한다. 그 길만이 세계시장에서 ‘한국적’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탄생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20∼30년간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은 미국 디즈니와 일본 아니메라는 양자 구도 안에서 움직여왔다. 하지만 3D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구도를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준 미디어다. 이제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우리 업계와 정부의 몫으로 남아있다.
<디지털드림스튜디오 영상사업부 서은숙 이사 marianne@ddsdream.com>